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의미가 부딪치는 공간에서 통치성을 발견하다

등록 2014-06-22 18:51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기능이 상이하거나 정반대인 독특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만들 ‘세월호 기억저장소’도 헤테로토피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놓고 간 신발이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명진 기자 <A href="mailto:littleprince@hani.co.kr">littleprince@hani.co.kr</A>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기능이 상이하거나 정반대인 독특한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앞으로 만들 ‘세월호 기억저장소’도 헤테로토피아적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사진은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이 놓고 간 신발이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헤테로토피아
미셸 푸코 지음,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1만2000원

토머스 모어(1478~1535)의 <유토피아>(1516)는 일종의 정치적 공상이었다. 모어는 썩어빠지고 폭력적인 체제인 16세기 영국을 대신해 현실에는 없는 어느 섬나라 이야기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통치의 아이디어를 담았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에서 이런 관념 속 유토피아와 실제 있는 장소로서 “현실화된 유토피아”를 구분한다. 헤테로토피아는 “반(反) 공간, 위치를 가지는 유토피아들”, “기능이 상이하거나 심지어 정반대인 독특한 공간들”이라고 규정한다. 양가성을 가진 공간인 헤테로토피아는 ‘실제 공간’이라는 점에서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와는 다르다.

푸코가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처음 쓴 건 1966년 봄 <말과 사물>에서였다. 그해 말 한 라디오 특강시리즈에서 그는 헤테로토피아를 “온갖 장소들 가운데 절대적으로 다른”, “일종의 반공간”이란 뜻이라고 막연하게나마 정의한다. 예컨대 헤테로토피아는 ‘묘지’처럼 도시 한가운데 있다가 마을의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의미가 변화하는 곳, ‘극장’처럼 여러 공간을 실제 한 장소에 겹쳐놓은 곳, ‘박물관’이나 ‘휴양지’처럼 시간과 단절(헤테로크로니아)을 동반하는 곳이다. ‘미국식 모텔’도 전면적으로 열려 있지만 불법적인 섹슈얼리티가 감춰지는 곳으로서 양가성을 지녀 이에 해당한다. 헤테로토피아란 중층적 의미가 경합하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강하다.

권력관계 드러내는 ‘현실 유토피아’
팽목항 혹은 세월호 기억저장소…

사실 ‘헤테로토피아’란 말은 푸코가 홀로 변화무쌍하게 개념화를 시도하다 그만둬버려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의 사후 발간된 이 책은 1966년 12월 푸코의 라디오 특강 원고와 일부 대담, 원고 등을 합친 것이다. 촘촘하고 엄격했던 <말과 사물>(1966), <지식의 고고학>(1969) 등 정련된 글쓰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부차적인 문헌”이자 “문학적인 게임”(다니엘 드페르)으로도 평가된다.

그럼에도 이 142쪽짜리 얇은 책은 푸코의 사유로 들어가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사후 출판금지라는 유언을 거스르고 푸코의 20년지기 연인이자 동반자였던 사회학자 다니엘 드페르와 푸코의 유족들은 그가 생전 공적으로 말한 것과 쓴 글을 발간하는 것은 전집을 만드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해 여러 책들을 발간해오고 있다.

미셸 푸코
미셸 푸코
푸코 사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헤테로토피아의 개념은 건축부터 사회학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선보인 인류학자 폴 래비나우와의 1982년 대담 ‘공간, 지식, 권력’은 푸코 저작들의 난해한 사유를 이해하는 데 많은 힌트를 준다. 푸코의 주된 학술적 키워드인 ‘통치성’과 ‘자유’라는 문제가 이 대담 속에 잘 녹아 있고, 전후 학문적 궤적을 이해하기 쉽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이 대담에서 푸코는 ‘치안’ 개념이 18세기에 이르러 단지 도시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에 적용되는 규제의 모태이자 통치적 합리성의 프로그램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19세기까지 치안은 개인의 행동 일반에 대한 규제 체계로 확장된다. 이때 치안은 “특별한 개입 없이도 매사가 자동적으로 유지될 만큼 잘 통제되는 규제체계를 창출하려는 프로젝트”가 되었다. 이는 ‘규율’과 ‘비정상성’의 문제와도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감시와 처벌>(1975)을 보면, 푸코는 19세기 도시가 다양하고 독특한 ‘분할의 권력 기술’을 적용해 그 공간을 조직한다고 본다. 분할의 권력 기술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구분하고, 추방하는 이원적 메커니즘을 작동한다. 그런 연장선상에서 비정상인을 추방하려는 도시계획도 함께 사유해볼 수 있다. 이처럼 ‘치안’과 ‘통치성’의 문제는 권력의 정체와 전략을 밝혀내는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장소가 현실의 권력관계를 드러내준다는 것 때문이다. 옮긴이의 글에서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한국 사회의 헤테로토피아를 몇가지 예로 든다. ‘××방’, ‘××관’은 사적인 오락의 공간이지만 공사 구분을 넘나드는 공간으로서 양가성을 가진다. 청계천과 4대강이 보여주는 자연과 콘크리트의 낯선 파노라마, 억압적 공간이지만 해방구가 된 두리반과 희망버스, 일상적 수다와 정치토론과 욕설이 마구 뒤섞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도 마찬가지다. 이 교수는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규범과 정상성의 권력관계를 일깨워주는 의미가 있다면 그곳이 헤테로토피아”라고 말했다.

결국, 헤테로토피아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적인 즐거움, 해방구의 범위, 정치적 실천의 허용 정도가 과연 어디까지일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일깨우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사유하게 하는 개념이다. 노란 리본이 달린 팽목항, 안산 합동 분향소, 시민들이 만들어갈 ‘세월호 기억저장소’도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헤테로토피아’다. 정교한 권력관계의 속성을 일깨워주는 장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