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소설집 <알로하>를 낸 윤고은. “내 최근작들은 타인들에 대해 좀 더 오래 시선을 머물게 하고자 했던 결과”라고 말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독자의 의표 찌르는 상상력 놀이
현실의 장벽 넘어서려는 몸부림
현실의 장벽 넘어서려는 몸부림
<알로하>
윤고은 지음
창비·1만2000원 윤고은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라면 참신함을 넘어 엉뚱하기까지 한 발상, 그 터무니없는 발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라 하겠다. 하늘의 달이 두개에서 세개, 네개로 계속 늘어나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무중력증후군>, 재난 여행이라는 극단적 설정을 도입한 두번째 장편 <밤의 여행자들>도 그러했고, 첫 소설집 <1인용 식탁>에서도 윤고은 특유의 패기 넘치는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다. <1인용 식탁>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두번째 소설집 <알로하>에서도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윤고은의 상상력 놀이는 이어진다. 술에 취한 이들의 전화를 받아 주는 서비스(<해마, 날다>), 지하철 순환선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의 책 홍보(<요리사의 손톱>), 캐릭터 분장을 한 채 거대한 홍보 공간을 돌아다니면서 남들 눈에 띄어 스티커를 받는 아르바이트(<월리를 찾아라>) 등등. 심지어 <큐>(Q)에서는 도시의 관광 수입을 늘리고 부동산 값을 올리기 위해 그 도시를 배경 삼은 소설을 써 주도록 소설가를 ‘유치’하는 상황이 그려진다. 독자는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하며 그 엉뚱함에 킥킥 웃음을 깨물다가도 이내 마음이 숙연해지고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발상들이 기발함을 위한 기발함의 산물이 아니라 현실의 하중과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 특별한 발상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들인즉, 번듯한 직업도 없고 발 뻗고 등을 누일 집 한칸 마땅치 않으며 가족이나 연인 같은 가까운 사람의 숨결 한조각 미치지 않는 고독하고 무력한 존재들이기 십상이다. <요리사의 손톱>의 주인공 정이 대표적이다. 사소한 실수로 다니던 직장에서 떨려난 그는 그동안 기거하던 사택을 비워줘야 하는데다 마침 사귀던 남자와도 헤어지게 된다. “회사, 집, 연애, 모든 것이 한번에 끝나버려서 정은 순식간에 무소속이 되었다.”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떠밀려 지하철 책 홍보 일을 맡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집을 비워야 할 날짜가 되자 그는 읽던 책을 두 손에 쥔 채 선로로 떨어져 죽고, 그 비극적인 사태 뒤에야 사람들은 그가 홍보하려던 책에 뜨거운 반응을 보인다. “두달 전 우리 가족은 네등분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사분의 일>은 부모의 이혼과 빚 때문에 사방으로 흩어져 살게 된 네 가족의 이야기다. 첫째딸이 결혼을 앞두고 남편 될 사람에게 ‘화목한 가정’을 보여줄 필요가 생기자 가족은 홈파티 장소로 대여되는 아파트를 빌린다. 황급하게 찍은 가족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짜 가정 놀이는 무사히 끝나는데, “가짜 방이 진짜 내 방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졌다”는 둘째딸의 토로가 아프게 다가온다. 아프기로는 “한집당 품을 수 있는 백수의 수는 최대 한명”이라는 <해마, 날다> 아빠의 말도 결코 덜하지 않다. 이 흥미로운 소설에서 주인공의 ‘음주 통화’ 서비스 단골 고객인 여성의 말은 회사와 집과 연애에서 총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 시대 청춘의 항변처럼 들린다. “언니는 거래처 있어요? 거래처 말이야, 거래처. 사귀는 사람 있느냐고요. 나는 두달 전에 거래처랑 쫑이 났거든요. 이년 사귀었는데 정규직 전환도 안해주지, 자르지도 않지, 질질 끌기에 그냥 제가 사표 쓰고 나왔어요.” 표제작과 <프레디의 사생아> <콜럼버스의 뼈> 같은 작품들에서 작가는 출처와 진위가 불분명한 채 서로 섞이고 번식하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보인다.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다는 소문이 있는 파리의 어떤 집(<프레디의 사생아>), 콜럼버스의 가짜 유해 소동과 자신을 입양 보낸 친아버지를 찾는 주인공(<콜럼버스의 뼈>), 지역 신문에 실린 이야기들에 자신의 이력을 꿰어 맞추는 하와이의 노숙자(<알로하>) 등은 윤고은의 작가적 고민과 그의 소설이 나아갈 다음 방향을 아울러 보여주는 것 같아 주목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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