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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한국인에게 산은 삶의 원형공간

등록 2014-07-20 19:35

한양을 그린 1788년작 <도성도>. 최원석 경상대 교수의 책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은 산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역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파고든 역작이다.
한양을 그린 1788년작 <도성도>. 최원석 경상대 교수의 책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은 산에 관한 우리의 관념과 역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파고든 역작이다.
20여년 천착해온 산 공부 집대성
풍수 바탕으로 역사와 맥락 짚어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
최원석 지음
한길사·2만원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구름처럼 살아라 한다/ 바람처럼 살아라 한다”(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부분)

시인은 삶의 근거이자 기준으로 산을 꼽는다. 산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산이 우리 주변에 흔하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라는 한국.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의 지은이 최원석 경상대 인문한국(HK) 교수는 “한국은 산의 나라”라고 단정한다. “한국 사회에서 산은 삶의 원형공간이자 상징이었고, 군사·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실제 토대였다.”

<사람의 산, 우리 산의 인문학>은 서울대 지리학과에서 풍수학자 최창조 교수의 지도로 산에 관한 석사논문을 쓴 때로부터 20여년간 줄기차게 산을 천착해 온 최원석 교수의 산 공부를 집대성한 책이다. 유가도 불가도 아닌 산가(山家)를 자처하는 그가 전공인 풍수를 바탕에 깔고 우리네 산 관념의 역사와 맥락, 향후 과제를 두루 짚었다.

최 교수는 천산(天山)·용산(龍山)·조산(造山) 세 개념으로 우리네 산 관념의 변천을 요약한다. 처음에 산은 하늘과 동일시되었다. 단군 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구하고자 내려온 곳이 태백산 신단수였던 것을 비롯해, 산은 하늘의 초월적 존재와 땅의 인간을 이어 주는 매개였으며 그 자체가 하늘의 대체물로 떠받들어졌다.

그렇게 숭배의 대상이던 산이 인간 삶의 요긴한 환경으로 인식되면서 산을 용으로 파악하기 시작한다. 중국 명대의 풍수서 <인자수지>에서 산을 가리켜 “크다가도 작고, 일어나다가도 엎드리고, 거스르다가도 순하고, 숨다가도 나타나며, 산가지의 형체가 일정하지 않고 조그마한 움직임도 다르”다는 점에서 용에 견준 것이 대표적이다. 풍수에서는 산과 함께 물의 위치와 형세를 중시한다. “산은 기가 갈무리된 모습이고, 물은 기가 운동하는 모습이다. 산을 타고 운행하는 기는 용으로 모이며, 용은 물에 임하면 머물러 생기를 베푼다.” 산을 주제로 삼은 책에 물을 다룬 장이 포함된 까닭이다.

용의 형상을 한 산의 성격과 기운을 삶에 활용하던 사람들은 급기야 없는 산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지은뫼’라는 순우리말로 불리기도 하는 ‘조산’이 그것이다. 풍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마땅히 산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산이 없는 경우 사람들은 흙을 돋우고 숲을 만들거나 돌탑을 쌓지 않으면 솟대나 장승을 그 자리에 세워 산을 대신하도록 했다. 조산은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최적 환경의 조성을 기조로 한 한국의 독특한 산 문화 전통이라는 점에서 (…) 이상적 주거환경의 조성을 위한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최 교수는 강조한다.

<산경표>로 대표되는 족보식 산지 서술 체계 역시 다른 나라에는 없는 한국 고유의 자산이자 유산이다. 조선 후기에 쓰인 이 책에서는 백두산을 머리로 하여 조선의 산맥을 백두대간이라는 하나의 큰 줄기와 14개의 갈래진 줄기로 보았다. 14개 줄기는 강을 끼고 있는 13개 정맥(正脈)과 산줄기 위주로 된 한개 정간(正幹)으로 나뉘는데, 이렇듯 “산을 시조로부터 족보식으로 관계 짓고 산줄기의 체계를 가름하여 대종(大宗)과 지맥(支脈)으로 나누는 방식은, 조선 후기의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사회질서와 종족의식의 강화라는 사회 이데올로기가 산지체계에 투영되어 재구성된 것”이라는 통찰이 흥미롭다.

지은이는 한국의 주요 명산들이 백두대간이라는 간선 계통으로 계열화되어 있다는 특성을 근거로 백두대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고 나아가 ‘백두대간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체계를 세울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2011년 문화재청에서 발주한 ‘지리산 세계유산 등재 연구용역’에 참여한 바 있는 지은이는 또한 자연과 역사문화가 하나로 어우러지고 네트워크처럼 통합되어 있는 ‘문화경관’으로서 지리산 역시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법하다는 제언을 내놓는다.

책 말미에는 ‘나의 산 공부 여정’이라는 맺음말이 실려 있는데, 이 글에서 최 교수는 백두대간 권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와 민속, 산지 생활사 연구라는 개인적 목표와 함께, 인문학적 산 연구소 설립 같은 사회적 과제 역시 제시한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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