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시인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독일에 머물고 있는 시인 허수경(41)씨가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현대문학)를 펴냈다. 허씨는 지금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모래도시를 찾아서>는 말하자면 고고학 산문집이라 할 수 있다. 바빌론, 니네베, 우르, 테베 등 고고학 현장을 배경으로 인간과 역사, 삶과 문학에 대한 사유를 펼쳐 놓는다.
시인 출신 고고학도로서 그가 고고학에서 확인한 글쓰기의 기원에 관심을 표하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글쓰기는 우선 경제 문서를 쓰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고 문헌학자들은 말한다.”(27쪽) 인용된 문장은 <글쓰기, 라는 것의 시작>이라는 글에 나오는 것인데, 이 글에서 시인은 문맹이었던 할머니의 추억을 끄집어낸다. 어린 시인을 데리고 바다로 산책을 나간 할머니가 새로 바닷풀이 돋아나던 바다의 ‘때깔’ 이야기를 글로 써 달라고 하던 부탁을 아직 들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에게는 마음의 부담으로 남아 있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에 시인은 훌쩍 낯선 땅 독일로 날아갔는데, 그는 여전히 고국과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한다. <기억과 기역, 미음과 미음>은 시리아의 발굴 현장에서 몸에 탈이 나서 누워 있으면서 고국의 ‘ㄱ 선생님’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하고 있다. 고국과 모국어가 그에게는 기억이자 미음이다. 몸과 마음의 치유제라는 말이다. 유학 초기를 회고하는 <바다 바깥>이라는 글에서 그가 “바다 바깥에는 많은 비슷한 사람들, 비슷한 이야기들,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으나, 너는 없었다”(175쪽)라고 쓸 때도 고국의 문학 동무를 향한 그리움, 머나먼 이국에서 느끼는 외로움은 진하게 묻어난다.
책의 마지막 장 <니네베 혹은 황성옛터>는 이라크전쟁에 촉발되어 쓴 글이다. 전쟁의 혼란을 틈타 고고학의 보고라 할 이라크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적 도굴과 문화재 유출을 겨냥해 지은이는 “지금 골동품 시장에 나와 있는 이라크의 유품을 사고파는 일은 부도덕한 일”(223쪽)이라고 일갈한다. 그럼에도, 그것을 부도덕한 일이라고 규정하는 것 외에는 무력할 뿐인 자신의 처지를 그는 “허름한 주점에 앉아 황성 옛터를 부르는 마음”(237쪽)이라 표현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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