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정 시인
‘신석정 문학상’ 제정 계기 재조명
“자연과 역사 함께 아우른 시세계
문학사적 축소 왜곡 바로잡아야”
“자연과 역사 함께 아우른 시세계
문학사적 축소 왜곡 바로잡아야”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와 같은 목가적 서정시로 잘 알려진 신석정(1907~1974·사진). 타계 40주년을 맞아 지난달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출범한 데 이어 신석정문학상이 제정되는 등 그의 문학 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7월11일 출범한 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는 중진 및 원로에게 시상하는 신석정문학상과 신진을 대상으로 하는 신석정 ‘촛불’ 문학상 두 부문으로 이루어진 신석정문학상을 제정해 10월25일 열리는 석정문학제에서 시상하기로 했다. 기념사업회는 석정의 제자인 허소라 시인(군산대 명예교수)을 위원장으로 삼은 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작품 공모 및 심사위원회 구성 작업에 들어갔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야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첫 두 연)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앞부분)
전북 부안 출신인 신석정은 1931년 <시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1939년 첫 시집 <촛불>을 펴내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신석정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편석촌 김기림이 1933년의 시단을 회고하면서 쓴 글을 통해 방향이 잡혔다.
“현대문명의 잡답을 멀리 피난한 곳에 한 개의 ‘에덴’을 음모하는 목가시인 신석정을 잊을 수는 없다. (…) 그의 목가 그 자체가 견지에 따라서는 훌륭하게 현대문명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편석촌이 처음 쓴 ‘목가시인’이라는 말은 이후 신석정의 문학세계를 가리키는 단골 표현처럼 동원되었다. 삼림대, 호수, 물새, 장미, 노루, 해, 하늘 같은 자연의 물상들과 그가 시의 청자(聽者)로 자주 동원하는 ‘어머니’는 문명의 질주 속에 잃어버린 자연과 순수 원형의 세계를 향한 그리움의 표출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규정과 평가가 신석정 시세계의 폭을 좁히고 더 나아가 왜곡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정양 시인은 1990년대 초에 발표한 평론 ‘목가적 음모-신석정의 <촛불>’에서 “목가적 성실성은 역사에 대한 성실성을 완성시키기 위한 예비적 음모였다”며 “소시민적 삶의 참담한 불을 켤 수밖에 없었던 그 시기에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니다’라고 버텨 보던 석정의 시는 비장하고 처절한 역사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정양 시인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도 “석정에게 ‘목가시인’이라는 규정은 가시면류관 같은 것이었다”며 “기념사업회 출범과 문학상 제정을 계기로 석정에 관한 문학사적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소라 시인도 “석정 선생은 ‘서울공화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고향에 머무르면서, 친일 시를 쓰거나 창씨개명도 하지 않은 지조 높은 시인이었다”며 “자연을 노래하되 그렇다고 해서 역사를 외면하지 않은, 자연과 역사를 아우르는 시 세계를 펼쳐 보인 선생의 시 세계를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데에 문학상이 큰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석정이 1939년 <문장>에 발표한 시 <들길에 서서>는 자연에 대한 애정과 신뢰 그리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정신 세계를 함께 담은,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작품이다.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우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삼(山森)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어니…”(<들길에 서서> 전문)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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