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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월호가 우리에게 보낸 마지막 신호는

등록 2014-08-31 19:36수정 2014-08-31 20:57

지난 7월 진도 팽목항에서 연 세월호 참사 100일 문화제에서 한 초등학생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쓰고 있다.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지난 7월 진도 팽목항에서 연 세월호 참사 100일 문화제에서 한 초등학생이 희생자들에게 보내는 글을 쓰고 있다. 진도/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학술·문예지들 ‘세월호 참사’ 기획

가족이 국가와 분리되는 절박함
‘유모차’의 어미를 거리로 불러내
“기울어가는 그 배에서 심지어 아이들은 이런 말을 했다. 내 구명조끼 입어…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 누구도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는 기울어진 배에서… 그랬다. 나는 그 말이 숨져간 아이들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박민규 <문학동네> 2014년 가을호 ‘눈먼 자들의 국가’)

추석을 코앞에 두고 ‘망각’과 ‘회피’의 정치 논리, 유족들에 대한 혐오발화가 판치는 가운데, 문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여러 격월간지와 계간 학술·문예지 가을호 특집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글을 다수 발표하고 나섰다. <문학동네> 특집 ‘4·16 세월호를 생각하다’에서 작가와 연구자들은 ‘세월호 이후’ 문학의 구실과 나아갈 바에 대해 뼈아프게 써내려간다. 시인이자 철학자 진은영은 ‘우리의 연민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짧고, 우리의 수치심은 자정의 그림자처럼 길다’에서 이제 문학이 “시혜의 논리를 반동적으로 활용하는 감성정치들이 정당한 싸움을 마비시키지 못하도록, 고통받는 이들의 표상을 여러 방식으로 균열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겸 언론연대 대표 전규찬은 세월호에 대한 글쓰기가 넘쳐나지만 여전히 지성적 언어와 논리적 담론이 부족하다고 지적하며 책임규명의 각론으로서 “폭력의 소재를 명확히 폭로하는 스피치 활동”을 강조했다. “포스트 세월호 국면에서 글쓰기는 상황원리의 이해와 사태의 조리있는 분석,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기록의 복합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전규찬은 각자도생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체제의 “바깥은 없다”고 단정하면서도 ‘시민’을 발견한다. “유모차를 끌고, 어린 생명을 앞장세워 거리로 나선 어미들은 국/가의 절연을 공표하는 정치적 신체에 다름 아니었다. 국가체제의 분열을 알리는 대중적 흐름이었다.” 진상을 규명하는 소셜미디어의 저널리스트, 애도 공연을 한 예술가·창작자, 저항공동체와 정치사회, 무엇보다 소수자의 상호부조와 약자의 보살핌 등은 세월호라는 “괴물성”에 맞선 “시민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소설가 박민규, 정치학 연구자 홍철기는 이 참사를 단순히 관피아·해피아라는 말로 대변되는 비리나 유착에 따른 것으로 보면서 ‘사고’와 ‘사건’으로 축소하는 프레임에 문제제기한다. 사건의 열쇳말이 된 “민영화”(박민규), “사유화”(홍철기)에서 고개를 돌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해법을 찾아가는 데 “그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과녁을 맞출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우리 자신의 무능력의 극복은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으로 만드는’ 공적 재현 행위와 그 실행과정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홍철기는 지적한다.

국가의 통치성과 가족의 문제에 대한 분석도 잇따랐다. 격월간 <말과 활> 7~8월호 세월호 관련 대담에서 푸코 연구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일본 정치철학자 사토 요시유키는 신자유주의의 권력개념을 좀더 세분화해 이 문제를 진단한다. 그는 현재의 권력을 “사람 자체를 버려 버리고 방치하고 내버려두는 신자유주의적 권력이면서 대단히 폭력적인 주권권력”이라고 비판한다.

여러 문인과 연구자들은 이 참사를 두고 국가의 명령을 거스르는 안티고네의 이야기를 다룬 소포클레스의 비극을 떠올렸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은 가족과 국가가 대립할 때, 가족은 국가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정치영역이 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분절, 국가가 국(國)-가(家)로, ‘국’이 ‘가’를 역사적으로 전유해온 열정적 애착의 관계가 탈구되었음을, 자신이 수호하려는 그 국가로부터 완벽하게 버림받는 가족이 국가와 분리되는 절박한 신호임을 일깨운 사건은 아닐까.”

계간 <진보평론>은 6편의 글로 세월호 특집을 묶었다. 오창룡 고려대 세계지역연구소 연구교수는 풀란차스의 논의를 바탕으로 신자유주의 국가권력과 통치성을 이론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국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 회피’와 ‘책임 축소’가 신자유주의 국가의 전략 그 자체라고 꼬집었다. 또 풀란차스 이론에서 보듯, 선진민주국가 또한 신자유주의의 영향 탓으로 삶에 대한 국가의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며 정치적 민주주의 제도의 급격한 쇠락, 형식적 자유에 대한 다면적 제한이 잇따른다고 풀이한다. “반복되는 위기에 대한 일관성 없는 대응, 근시안적 전략, 주먹구구식 대책 수립은 신자유주의 국가 리더십의 본성이 된다.”

‘포스트 세월호’를 다루기 시작하면서 진단의 범주도 넓어진다. 계간 <창작과 비평> 가을호는 특집으로 ‘세월호 이후 한국사회 무엇을 바꿀까’를 묻는다. 이 책은 ‘○○사회’라고 표현되는 유행 담론들의 성취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를 말하는 사회’와 분단체제론, 세월호 사고 보도로 드러난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가능성을 지적한 정연우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의 ‘한국언론, 몰락인가 갱생인가’ 등 글 4편과 함께 2030 세대 참석자들의 좌담회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세월호를 넘는 청년들’을 실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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