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목곽고.
완전한 원형 갖춘 대형 목곽고 최초 확인
수준 높은 각종 공구·생활용품 다량 수습
백제문화제 때 발굴현장서 일반인 설명회 개최
수준 높은 각종 공구·생활용품 다량 수습
백제문화제 때 발굴현장서 일반인 설명회 개최
백제의 옛 도읍 왕성이자 백제 멸망의 아픈 순간을 간직한 충남 공주 공산성. 이 성터 땅밑에서 1300여년 전 백제시대의 생생한 타임캡슐이 드러났다. 백제 시대의 거대한 나무틀 저장시설인 대형 목곽고와 백제 멸망 당시 나당연합군과의 전쟁 상황을 생생히 전해주는 갑옷과 말갑옷, 칼과 화살촉, 깃대꽂이 등이 쏟아져 나왔다.
문화재청은 올해 공주대박물관(관장 이남석)이 공산성에서 벌인 7차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 완전한 형태를 갖춘 대형 목곽고(木槨庫)를 처음 확인하고, 나당연합군과 백제의 전쟁에 쓰인 무기류들을 대량 발굴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08년부터 진행된 공산성 백제 왕궁 부속시설 발굴 사업의 일부로, 성내 부속시설 영역 중앙부에 해당하는 곳에서 진행됐다.
발굴된 유적, 유물 중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 것은 건물지군 북단의 대형 목곽고다. 크기는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이며, 너비 20~30㎝ 내외의 판재를 기둥에 맞춰 정교하게 만들었다. 바닥면에서 벽체 상부까지 썩지 않고 조성 당시 모습 그대로 원형이 남아 있었다. 특히, 기둥 상부의 긴 촉이 테두리보 상부까지 솟아나 있고, 내부에서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된 점 등으로 보아 상부에 별도의 지붕 구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백제 유적에서 목곽고는 대전 월평동 산성, 부여 사비도성 내에서도 발굴됐으나, 훼손이 심한데다 하단의 바닥과 50㎝ 내외 높이의 벽면만 일부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공산성 목곽고는 상부 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목조 건축물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실증하고 있어 백제 건물 복원과 연구 등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목곽고 안에서는 복숭아씨, 박씨가 다량으로 나왔다. 무게를 재는 석제 추와 생활용품인 칠기, 목제 망치 등의 공구도 수습되었다. 석제 추는 원형으로 중앙에 고리가 있으며, 무게는 36g이다. 칠기는 목재를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표면에 옻칠이 정교하게 칠해져 있다. 또 나무망치를 비롯하여 목제 공이와 손잡이, 목제 가공품 등이 수습되었다. 원통형의 망치는 너비가 19㎝이고, 손잡이 길이 15.5㎝의 휴대용 공구로 목재를 결구할 때 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공구로, 현재도 이런 형태가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디자인 면에서도 매우 뛰어나다.
건물터 북쪽의 저수시설에서는 완전한 형태의 철제 갑옷, 옻칠이 된 마갑(馬甲), 철제 마면주(馬面:말의 얼굴 부분을 감싸는 도구), 마탁(馬鐸:말갖춤에 매다는 방울)과 함께 대도(大刀:큰 칼), 장식도(裝飾刀:장식용 칼), 다량의 화살촉, 철모(鐵牟) 등의 무기류와 다양한 기종의 목제 칠기류가 다수 수습됐다. 저수지 주변 건물지 대부분이 큰 화재로 무너져내린 정황을 고려하면 660년을 전후한 백제 멸망기에 나당연합군과 전쟁하는 상황이 공산성 안에서 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조사단 쪽은 추정했다.
특히 명문이 적힌 옻칠 갑옷이 출토되었는데, ‘參軍事’ ‘○作陪戎副’ ‘○人二行左’ ‘近趙○’(‘참군사’ ‘○작배융부’ ‘○인이행좌’ ‘근조○’) 등 20여 자를 확인했다. 명문에 대한 정확한 판독이 완료되면 저수시설에서 출토된 유물의 역사적 성격이 더욱 명확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2011년 발굴 당시 저수시설에서는 ‘정관19년(貞觀十九年, 645년)’이 적힌 옻칠 갑옷과 말갑옷이 나와 주목을 끈 바 있다.
또 백제 유적지에서는 처음 확인되는 말안장 뒤쪽에 세워 기를 꽂는 용도의 깃대꽂이도 주목된다. 이 깃대꽂이는 철로 만들어졌으며, 약 60㎝의 크기로 S자 모양(巳行)으로 구부러져 있다. 삼국 시대 깃대꽂이는 가야는 합천의 옥전고분에서 실물이 발견되었으며, 고구려는 쌍영총과 삼실총 벽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 깃대꽂이는 그동안 서산 여미리 출토 토기 문양으로만 추정할 수 있었는데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서 실물이 최초로 출토됨으로써 백제 기승(騎乘)문화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확보하게 됐다는 평가다.
발굴단은 60회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26일부터 10월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발굴조사 현장을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문화재청
목곽고에서 수습된 나무망치와 복숭아씨를 비롯한 각종 유물.
저수시설에서 수습된 옻칠 갑옷의 명문.
저수시설에서 수습된 화살촉.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