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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버지가 말한 ‘빨치산의 제주’ 아름다워 놀랐다”

등록 2014-09-23 18:48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소설가 김태용(왼쪽)과 한국계 미국 작가 수잔 최가 22일 오전 제주에서 이 축제와 서로의 문학 세계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최재봉 기자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한 소설가 김태용(왼쪽)과 한국계 미국 작가 수잔 최가 22일 오전 제주에서 이 축제와 서로의 문학 세계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최재봉 기자
‘2014 서울국제작가축제’ 김태용이 만난 수잔 최
소설가 김태용

“망상 빠진 내 주인공 극단 치닫고
수잔 주인공은 현실 복귀하더라
한국 문학, 독자·가치·역할 줄었다”

한국계 미국 작가 수잔 최

“첫 작품, 아버지 삶에 상상력 더해
‘나의 교육’은 사람관계 초점 맞춘 것
미국도 상업의 문학 압력 비슷하다”

‘2014 서울국제작가축제’가 21일 제주에서 열린 환영만찬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국내외 작가 28명이 참가하는 이번 축제는 27일까지 일주일 동안 펼쳐진다. 축제에 참가한 미국 작가 수잔 최와 한국 소설가 김태용이 22일 오전 제주에서 대담을 나눴다. 수잔 최는 한국에도 번역된 <외국인 학생> <미국 여자> <요주의인물>과 미국에서 지난해 출간한 <나의 교육> 네 장편을 냈으며 아시아계 미국 문학상 소설 부문과 제1회 펜/제발트상 등을 수상했다. 영문학자 최재서(1908~1964)의 손녀이기도 하다. 김태용은 소설집 <풀밭 위의 돼지> <포주 이야기>와 장편 <숨김없이 남김없이>를 냈으며 한국일보문학상, 웹진문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김태용(이하 김) 수잔 최 선생의 첫 소설인 <외국인 학생>은 전쟁 직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간 부친(최창 인디애나주립대 교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알고 있다. 소설에 보면 주인공 창이 전쟁 중에 제주 한라산 동굴에서 빨치산을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축제의 첫 행사가 제주에서 열리는데, 소설을 쓰기 전에 제주에는 와 보셨는지?

수잔 최(이하 최) 지금까지 한국에 세번 왔는데 처음은 아홉살 아이였을 적이고, 어른이 되어서는 1999년에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제주는 처음인데, 자료를 보면서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아름다운 아열대의 풍경이어서 놀랐다. 아버지가 갔던 것과 같은 빨치산 동굴에 들어가 보지 못한 게 안타깝다.

김 소설은 아버지가 전쟁을 전후해서 겪은 일들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작가로서는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데서 오는 어려움도 있었을 테고,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이야기를 쓴다는 데에서 비롯되는 심리적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최 사실 아버지는 한국을 떠나기 전 당신이 겪은 일들에 대해서는 말을 무척 아꼈다. 내가 대학생이 된 뒤에야, 그것도 드문드문 말씀을 해 주셨을 뿐이다. 아버지의 삶에 관해서는 많은 부분이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작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더 유리했다. 물론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전문가들의 책은 부지런히 챙겨 읽었다.

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작가 자신의 부친을 주인공 삼아 다루었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작가로서 나에게는 섬세한 표현력이 더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도 그렇고, 가령 남자 주인공 창이 산더미처럼 쌓인 헌책들 책갈피에서 책 주인이 감추어둔 지폐를 찾는 삽화도 그랬다.

최 그 대목은 아버지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을 소설로 옮긴 것인데, 작가로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김 나로서는 이번이 ‘서울국제작가축제’에 두번째 참가하는 것이다. 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가 일대일로 짝을 이루어 낭송도 하고 토론도 벌인다는 점이다. 이런 방식이 마음에 드는지?

최 이런 방식의 문학 행사는 처음인데, 매우 마음에 든다. 한국과 외국의 많은 작가를 한꺼번에 만난다는 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파트너 작가가 있으면 그 작가가 일종의 닻이 되어서 상황을 수월하게 이끌 수 있다고 본다.

김 이번 축제의 주제는 ‘에로스와 꿈’이다. 수잔 최 선생의 이전 작품들에서 에로스와 꿈이 절제되고 감추어져 있었던 데 비해 이번 축제 낭독 작품인 <나의 교육>에서는 그 부분이 전면적으로 드러나 보였다. 한국어로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는데, 빨리 번역본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최 정확하게 보셨다. 이전 작품들이 정치와 역사, 사회적 사건 들을 배경으로 삼았다면 <나의 교육>은 사람 관계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이 소설 주인공인 레지나에게 꿈이 있다면 육체적 열정에 기반한 낭만적 사랑을 완성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현실의 장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게 되고, 그런 꿈의 그늘이 레지나에게는 바로 교육이자 성장인 셈이다. 반대로, 레지나가 사랑하는 마사는 그런 낭만적 사랑의 불가능성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처럼 서로 다른 두 사람의 관계를 탐구하고 싶었다.

김 그런 점에서 보자면 우리 두 사람은 비슷하게 망상에서 출발하지만 결말은 사뭇 다른 것 같다. 수잔의 주인공이 망상인 것을 확인하고 현실로 복귀한다면 내 소설 주인공은 망상의 극단으로 치달아간다. 나는, 망상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탐구에 관심이 많다.

최 그렇다. 김 선생이 더 창조적이라면 내 소설 주인공은 겁 많고 실질적이라 할 수 있겠다. 특히 <나의 교육>의 결말은 약간 보수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처음에 육체적 열정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던 레지나는 결국 결혼으로 상징되는 관습적 삶에 정착한다.

김 아버지를 주인공 삼은 <외국인 학생>은 물론 일본계 미국 여성을 등장시킨 <미국 여자>나 역시 부친과 비슷한 한국계 수학 교수가 나오는 <요주의인물> 등, 대부분의 주인공이 아시아계인데, 그것은 아무래도 한국계 혼혈이라는 수잔 최 선생의 개인적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최근작인 <나의 교육> 주인공도 혹시 혼혈인가?

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소설 주인공 레지나 역시 필리핀계 어머니와 독일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역시 나 자신이 혼혈이기 때문이 아닐까. 나에게는 그런 정체성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소설의 주제나 핵심적인 이야기에는 그것이 크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김 나도 대학(서울예대 문창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수잔 최 선생도 대학에서 창작을 가르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작가로서의 나와 선생으로서의 내가 자주 충돌하는 것을 느낀다. 가능한 한 작가로서의 나와 선생으로서의 나를 구분하려고 하는데, 수잔 최 선생은 어떤지?

최 동의한다.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평가할지에 대해 나도 고민이 많다. 가르치는 시간이 내 삶에서 일정 부분을 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김 한국에서 문학은 갈수록 독자도 줄고 고유의 가치와 역할도 크게 약해졌다. 문학의 대중화와 상업화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의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수잔 최 선생 나름의 ‘복안’이 따로 있는지?

최 미국도 한국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고 문학에 대해 거의 비슷한 걱정과 압력이 있다. 상업 출판의 압력이 문학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물론 언제나 그러했지만 지금은 더 극단적이다. 미래의 독자인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비롯한 온갖 소일거리들에 정신이 팔려 책에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내게는 열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책보다는 당연히 게임을 더 좋아한다. 부모로서 나는 게임에 매우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어려서부터 독서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제주/정리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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