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 도종환 시인. “내 인생은 어느덧 늦은 오후를 지나고 있어 곧 어두워질 수도 있겠지만, 해 지기 직전의 노을처럼 찬란한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삶의 문제와 밀착한 시 세계” 평가
수상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굴하지 않는 희망과 의지 드러내
수상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굴하지 않는 희망과 의지 드러내
㈔신석정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한겨레신문사가 후원하는 신석정문학상의 제1회 수상자가 나왔다. 시인 신경림·오세영·정양·안도현씨는 24일 오후 서울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심사를 거쳐 도종환 시인을 제1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수상 시집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창비, 2011)다.
심사위원들은 “삶의 문제와 밀착해 있는 시 세계”(신경림) “사회성과 서정성의 결합”(오세영) “민중적 정서에 맞닿아 있는 시 정신”(정양) “서정과 공동체의 운명을 아우르는 자세”(안도현) 등을 근거로 도종환 시인에게 상을 주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최근 3년 사이에 시집을 낸 중견 이상 시인’을 대상으로 삼은 심사에서는 도종환 시인과 함께 맹문재·반칠환·이성복 시인이 수상 후보자로 논의되었다. 도종환 시인이 현직 국회의원 신분이라는 사실이 심사 과정에서도 논의되었는데, “국회의원은 비정규직이지만 시인은 영원하다”는 정양 심사위원의 판단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동의하면서 이렇다 할 논란은 벌어지지 않았다.
“내 인생의 시간은 오후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와 있다 내 생의 열두시에서 한시 사이는 치열하였으나 그 뒤편은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다// 이미 나는 중심의 시간에서 멀어져 있지만 어두워지기 전까지 아직 몇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고맙고,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쁘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부분)
도종환 시인의 열번째 시집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인생의 오후에 쓰인 시편들을 담고 있다. 하루로 치면 오후, 계절로 치면 가을에 해당하는 나이를 건너는 중인 시인은 “아직도 내게는 몇시간이 남아 있다”(<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며 굴하지 않는 희망과 의지를 과시한다. 같은 시집에 실린 또 다른 가을 시편 <가을 오후>에서 그는 “쓸쓸해지면 마음이 선해진다는” 통찰을 내비치기도 하는데, 쓸쓸함에 기반한 선함과 낙관에의 의지에서 도종환 시 특유의 건강한 낙천성은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수상자로 결정된 뒤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도종환 시인은 “무엇보다 국회에 들어와 있어도 여전히 시인임을 인정해 준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례대표로 19대 국회에 입성한 그는 2016년 5월29일까지 임기를 남겨두고 있다.
“평생 시를 써 온 사람도 일단 국회에 들어가면 더 이상은 문인이 아니라고 여기는 시선들이 있더군요. 그러나 저는 여기 들어와 있는 2년여 동안 한시도 문학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계절마다 문예지에 신작 시를 빼놓지 않고 발표했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이후에 발표한 시들만으로도 새 시집 한권을 묶기에 충분합니다.”
신석정의 이름으로 제정된 문학상의 첫 회 수상자가 된 데 대해 도종환 시인은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신석정 시인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같은 아름다운 서정시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민족의식이 투철한 분입니다. 최근 <한겨레>를 통해 공개된 해방공간 미발표 시들을 보아도 신석정 선생님은 서정적 깊이와 현실을 보는 안목을 두루 갖춘 뛰어난 시인임을 알 수 있어요. 그런 분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을 받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1954년생인 도 시인은 올해로 회갑을 맞았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으니 올해는 그의 등단 3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후배 시인들이 그의 시집 열권에서 뽑은 시 99편을 묶은 등단 30주년 기념 시선집 <이마를 씻어주는 별 하나>(가제)가 다음달 말 출간될 예정이다. 그는 “대통령선거 패배와 세월호 사태 같은 사회 분위기 때문에 최근 내 시에는 슬픔·절망·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가 많아졌다”면서도 “그렇지만 다시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나 스스로도 남은 삶을 어떻게 꾸려갈지 하는 모색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성 및 신인의 작품 공모 방식을 통해 선정된 신석정촛불문학상 제1회 수상자로는 시 <발아> 등을 제출한 최정아 시인(오른쪽 사진)이 선정되었다. 신석정문학상 상금은 3000만원, 신석정촛불문학상은 500만원이며 두 상의 시상식은 다음달 25일 전북 부안 신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최정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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