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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인터넷 역사는 공유와 협력의 역사

등록 2014-09-28 22:09

권위 부정한 ‘히피’가 출발점
‘개방형 혁신’ 흥망성쇠 좌우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정지훈 지음
메디치·1만6000원

반도체와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삼성전자는 애플의 라이벌로 여겨질 만큼 세계적인 아이티(IT) 기업이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세계 아이티·인터넷 산업에서 리더십을 가진 기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의 아이티·인터넷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래학자이자 아이티 전문가인 정지훈 경희사이버대 모바일융합학과 교수가 쓴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는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한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에 대해 이처럼 저평가하는 이유는 아이티와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속성과 철학에 대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너무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아이티와 인터넷을 대부분 기술의 발달, 그로 인해 생산되는 금전적 이윤 등 ‘산업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 있다.” 인터넷을 산업으로만 바라볼 뿐, 문화를 모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인터넷을 탄생시킨 문화란 무엇일까. 지은이는 1960년대 미국 서부,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한 거리에 모여 살던 ‘히피’들이 그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 중심 가치관을 대신하여 동양의 참선과 요가를, 먹는 것 또한 육식을 피하고 채식을 하”며 “자유와 대중을 중심에 두고 권위와 전통을 부정하”던 이들이 그 문화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비트세대’로 불린 1950년대의 미국 젊은이들은 환각제인 엘에스디(LSD)를 탐닉했으며, 코뮌운동, 언론자유운동, 소비자운동, 흑인시민권운동, 여성운동, 게이해방운동, 베트남전 참전 반대운동 등을 펼쳤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노버트 위너(사이버네틱스, 비트), 존 폰 노이만(에니악), 데니스 리치(C언어), 빈튼 서프(TCP/IP), 제프 베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테드 넬슨(하이퍼텍스트), 마크 앤드리센(넷스케이프), 제임스 고슬링(자바), 더글라스 엥겔바트(마우스). 이들은 인터넷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거인들이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노버트 위너(사이버네틱스, 비트), 존 폰 노이만(에니악), 데니스 리치(C언어), 빈튼 서프(TCP/IP), 제프 베조스(아마존),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테드 넬슨(하이퍼텍스트), 마크 앤드리센(넷스케이프), 제임스 고슬링(자바), 더글라스 엥겔바트(마우스). 이들은 인터넷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거인들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가정을 이루고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 당시 싹트기 시작했던 아이티 산업의 주력이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 대신 개인, 독점 대신 공유, 폐쇄 대신 개방이라는 철학을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에 심었다. 지은이는 전작인 <거의 모든 IT의 역사>를 잇는 이번 책에서 인터넷의 탄생과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그들이 남긴 에피소드와 교훈을 새긴다.

‘사이버네틱스’와 ‘비트’라는 개념을 창안한 융합과학자 노버트 위너와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을 만든 존 폰 노이만, 마우스를 처음 만들어낸 더글라스 엥겔바트, 시(C)언어의 창시자 데니스 리치, 해커문화 주도자 리처드 스톨만, 컴퓨터 간의 통신을 가능하게 한 프로토콜 티시피/아이피(TCP/IP)를 발명한 빈튼 서프와 밥 칸, 하이퍼텍스트 개념을 정립한 테드 넬슨, 월드 와이드 웹을 창안한 팀 버너스 리,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의 아버지 제임스 고슬링 등은 인터넷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거인들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만큼 변화무쌍한 인터넷 역사에는 무수한 아이러니가 있다. 예를 들어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로 전자제품의 혁명을 일으킨 미국 에이티앤티(AT&T)의 벨 연구소나 수많은 아이티 인재를 보유했던 제록스가 당장의 성과에 눈이 어두워 디지털 혁명의 가능성을 놓친 일화는 유명하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공유와 협력 정신이다. 한때 소셜웹의 강자였던 마이스페이스의 몰락과 신흥 강자로 떠오른 페이스북이 좋은 예다.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퍼레이션이 인수한 마이스페이스는 당장의 수익을 위해 광고를 도배하고 사용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유튜브를 비롯한 이른바 ‘서드파티’한테 자신의 서비스를 개방하지 않았다. 결국 이용자들은 마이스페이스를 버렸다.

이에 비해 페이스북은 개방과 협력 모델을 이용했다. 누구나 페이스북에 응용 프로그램이나 서비스, 콘텐츠 등을 제공할 수 있도록 했고, 수익이 나오면 개발자들에게 나눠줬다. 그 결과 협력업체들이 개발한 서비스와 애플리케이션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올려주는 데 커다란 구실을 했다. 이것이 히피에서 해커로 이어지는 인터넷의 공유 정신이다. 다 죽어가던 아이티 공룡 아이비엠(IBM)이 리눅스의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받아들여 회생의 계기를 맞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역시 다른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자신들의 서비스를 이용해서 더욱 커다란 생태계를 만들어내는 개방형 혁신을 성공시켰다.

산업 생태계가 살아야 그 안에 깃든 생명인 기업도 산다. 나만 살려고 남을 짓밟다간 모두 죽는다. 기술 탈취와 비용 떠넘기기, 온갖 갑질에 익숙한 국내 대기업들이 이 불멸의 진리를 깨닫게 될 날은 언제일까.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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