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 <문학을 걷다>를 낸 김윤식 교수. “작품 바깥으로 나가 세상 및 현실과 대면할 시간이 없었다. 인생을 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나는 이류”라고 말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원로 문학비평가 김윤식 교수
‘한겨레’ 칼럼 묶은 ‘문학을 걷다’ 내
“작가나 문학 전공자 겨냥한 글”
저서 250권…하루 10매꼴 집필
‘한겨레’ 칼럼 묶은 ‘문학을 걷다’ 내
“작가나 문학 전공자 겨냥한 글”
저서 250권…하루 10매꼴 집필
“신문 칼럼이란 게 정말 엉거주춤한 양식이더군요. 처음엔 길게 쓴 걸 깎고 다듬어서 8장에 맞추느라 오히려 힘들었어요. 그래도 짧은 글을 쓰는 훈련은 잘 했어요. 칼럼 쓰기의 장점이랄까. 지금은 문학 월평을 쓰면서도 작품 한편당 원고지 10장을 넘지 않게 쓰는 식의 리듬이 생겼지요.”
원로 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 ‘김윤식의 문학산책’ 일부를 모은 책 <문학을 걷다>(그린비)를 펴냈다. 김 교수의 칼럼은 2005년부터 올 5월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실렸는데, 이번 책에는 2010년 이후에 쓴 글들이 묶였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자택에서 만난 김 교수는 “(칼럼을 쓸 때) 일반 독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작가나 문학 전공자를 겨냥했다”며 “짧은 분량이라 해도 관련된 자료를 모두 챙겨 읽고 전후 맥락을 파악한 뒤 써야 하기 때문에 만만치는 않다”고 말했다.
“좋은 글은 남을 ‘까는’ 글이 아닙니다. 작품을 끌어올리고 작가를 존중하는 것이 비평의 기본이지요. 이걸 떠나면 좋은 글이 쓰여지지 않습니다. 물론 비평(criticism)이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이고 저 역시 이따금씩 아쉬움을 표하는 말도 쓰긴 합니다만, 비평의 원칙은 어디까지나 공감과 감동이라고 믿습니다.”
김 교수는 특히 ‘새로운 것’을 낯설다고 물리치지 않고 수용하는 태도를 강조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해(1936년)에 이상의 <날개>가 등장했을 때 비평가는 어째야 했을까요. 새로운 것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와 해박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요컨대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지요. 서머싯 몸이 ‘비평가는 위대한 인간’이라는 말을 한 취지가 그런 것입니다.”
김 교수에게 학자이자 비평가로서 ‘스승’으로 삼은 이들을 묻자 세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 죄르지 루카치, 에토 준 그리고 고바야시 히데오.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 아직 금서로 있을 때 그 해설을 번역해서 <현대문학>에 3회에 걸쳐 연재했습니다. 이 책은 소설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아니라, 시예요. 왈 부르주아의 서사시가 소설이라는 것이죠. 그때까지 해 오던 시 공부를 그만두고 소설 쪽으로 옮겨 간 게 이 책 때문이었어요.”
김 교수의 책 <이광수와 그의 시대> 등에도 큰 영향을 끼친 <소세키와 그의 시대>의 지은이 에토 준에 대해 그는 “글쓰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굉장한 사람”이라 표현했고, ‘일본 평론의 개조(開祖)’ 고바야시 히데오에 대해서는 “워낙 대단한 인간이어서 함부로 말하지 못할 정도”라고 했다.
박사논문을 다듬은 1973년 작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이후 40여년간 250권에 육박하는 책을 낸 이 다산가(多産家)에게 특히 애착이 가는 저서를 꼽아 달라고 요청하자 “별 가치 있는 책들은 아니다”라면서도 역시 세 권을 들었다.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근대문학 전공자로서 한국과 일본의 관련 양상에 특히 관심을 기울여 온 학자로서의 이력을 짐작하게 하는 책들이다.
지금도 하루 원고지 10장꼴의 집필 리듬을 유지하고 있다는 노학자는 그러나 문학과 책의 장래에 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안타까움을 표하지도 않았다. “제행무상 아니겠소? 우리 시대는 책 속에 중요한 사상과 내용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새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책 안 읽는 풍토를 개탄한다는 이들도 있는데,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삶이 바뀌었으니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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