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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를 급진화해야 불평등 논의가 산다”

등록 2014-10-05 19:39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나온 뒤 분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오랜만에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형 서점에 한데 진열돼 있는 피케티와 마르크스 관련 책들. 
 탁기형 <한겨레21> 선임기자 <A href="mailto:khtak@hani.co.kr">khtak@hani.co.kr</A>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나온 뒤 분배 문제에 대한 관심이 오랜만에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대형 서점에 한데 진열돼 있는 피케티와 마르크스 관련 책들. 탁기형 <한겨레21> 선임기자 khtak@hani.co.kr
국내서도 분배 논쟁 화두로
“생산을 뺀 분배이론은 한계
임금인상이 세제보다 효과”
불과 6개월 만에 미국에서 <21세기 자본>을 50만권 이상 팔아치우며 ‘월드 스타’로 떠오른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지난달 방한해 여러 방송과 신문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 때문인지 벌써 피케티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이를 더욱 깊이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피케티를 계기로 분배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물과 사상> 10월호.
<인물과 사상> 10월호.
“피케티 더 다뤄야” 월간 <인물과 사상>(왼쪽 사진)은 10월호에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을 표지인물로 내세워 인터뷰했다. 참여정부의 ‘경제개혁 3인방’ 가운데 한명으로,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과 대통령 직속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기조실장을 지낸 그는 지난봄부터 피케티 이론의 한국 적용을 꾸준히 연구해왔다. 정 원장은 주류경제학에 찬물을 끼얹은 피케티에 대한 논쟁이 확산되길 기대하는 쪽이다. “보수 쪽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경제학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분배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는 거다.”

인터뷰에서 정 원장은 “피케티가 주류 경제학의 논리를 붕괴시킬 만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주류 경제학은 성장이 지속되면 분배는 각자 잘 알아서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을 펴왔지만,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이대로 간다면 소득 불평등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덧붙여 정 원장은 “한국이야말로 소득 불균형과 경제적 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 나라”라고 설명한다.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비율을 가리키는 베타(β)값이 높을수록 소득 불평등이 심각한데, 한국은 베타값이 7.5를 기록할 정도로 불평등이 대단히 빠르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정치적 요소가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우리나라에서 ‘성장이냐 분배냐’는 논쟁의 결과는 늘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내려져왔고, 그렇게 이데올로기 싸움에서 분배 문제가 뒤로 밀려왔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피케티를 다루면 불평등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다면 이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분배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것이다.

현재 갉아먹는 과거 <인물과 사상> 같은 호에서 원용찬 전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베블런으로 읽어보기2’라는 글을 통해 피케티를 미국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과 비교한다. 이를 보면, 피케티는 과거 자본 총량이 벌어들이는 자본수익률(r)이 현재의 생산소득과 경제성장(g)을 갉아먹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블런은 과거 공동체 사회가 쌓아놓은 기술·지식에 ‘자본’이 독점적 소유권을 설정한다고 본다. 결국 과거의 기술 지식이라는 상속 자산은 갈수록 커지고 소수 자본가에게 집중돼 불평등은 구조적으로 심화된다는 것이다.

베블런의 이론으로 보면, 자본은 금융이고 권력이며 생산의 효율에 큰 관심이 없다. 오히려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생산 효율을 떨어뜨리는 ‘전략적 사보타주’를 써서 높은 가격과 최대 이윤을 추구한다. 그 뒤 생산량과 임금소득이 떨어지면 경제성장률(g)은 자본수익률(r)을 따라잡을 수 없다. 따라서 r>g라는 피케티의 부등식이 항구화하는 것이다. 베블런은 진정한 생산성이야말로 사회공동체의 경험과 모든 지적 유산이 계승돼 이룩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기에 피케티의 분배에 대한 문제의식은 소수 자본가 손에 들어간 사회 공동 자산을 어떻게 사회로 돌릴 것인지 묻는 베블런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는 얘기다.

피케티는 틀렸다? 국내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들(김공회·김어진·오창룡·이재욱·이정구·최철웅)이 쓴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바다출판사)의 부제는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이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공회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연구위원은 ‘피케티 신화’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글을 보면, 우선 <21세기 자본>의 미덕은 (주류) 경제학 자체를 비판하고 ‘정치경제학’을 복원한 데 있다. 분배를 경제의 핵심 문제로 환원해 18~19세기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고전파 경제학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은 피케티의 자본수익률(r)이 애초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지적한다. 어떤 자본 소유자는 이득을 보겠지만 또 다른 자본 소유자는 망하기도 하는 등 엄청난 내부 격차가 있다는 것이다. 자본수익률 개념은 “하나의 추상”일 뿐이며, 개인간 가구간 소득 격차가 매우 큰 상태에서 거시경제적 평균치는 눈속임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굳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크다는 부등식(r>g)이 아니더라도, 대자본을 가진 상위 1%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고, 불평등은 커질 수 있다.

더 결정적인 한계는 <21세기 자본>이 생산을 뺀 분배이론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비자본 소유자가 자본 소유자들과 맞닥뜨리는 곳은 분배가 아닌 생산의 영역이라고 설명한다. 노자간의 계급투쟁 결과 상당한 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면 수익률에 타격을 주게 되고, 이것이 자본수익률을 떨어뜨리는 데 자본세보다 효과가 클 수 있는데도 피케티는 이 점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상위 1%에 대한 분석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최상위 소득이 최하위 50%에게 가는 직접적 방식, 임금 인상을 고민하는 일이라고 김 위원은 강조한다. “불평등 심화의 가장 핵심적인 원인은 (…)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더없이 초라해졌다는 데 있다. 이를 부정하거나 부차적인 것으로 두는 불평등 논의는 모두 틀렸다.” 피케티를 ‘급진화’하는 것만이 오랜만에 화두가 된 불평등 논쟁을 살리고, 체제를 더욱 인간적인 모습으로 가꿔가는 유일한 길이라는 주장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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