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교양 잠깐독서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느린 걸음·1만2000원 “아이가 우유를 달라며 울음을 터뜨릴 때, 아이의 신체기관이 식료품점에 진열된 우유병에 닿기 위해 길들여지고, 제 기능을 포기한 인간의 젖가슴에서 등을 돌릴 때, 또 한 명의 중독된 소비자가 탄생한다.” 대형마트 한바퀴 돌면, 1시간이 잠깐이다. 사야 할 물건 목록 손에 쥐고도, 어김없이 한바퀴 그대로 돈다. 풍요롭다, 고 느끼는가? ‘아이고, 의미없다.’ 36년 전 나온 이 책에서 지은이는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고 짚었다. 진보는 ‘물질의 풍요’와 동의어가 아니다.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준 풍요에 기대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감을 지은이는 ‘현대화한 가난’이라고 표현했다. 이 ‘돌연변이 가난’을 불러온 것은 모든 것이 시장으로 빨려들어간 ‘근원적 독점’이다. “노동은 더 이상 노동자가 느낄 수 있는 가치의 창조가 아니라, 주로 사회적 관계인 직업을 의미한다. 무직은 자신과 이웃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자유라기보다는 슬픈 게으름이 되었다.” 묵시록으로 읽히는 이 책의 화두는 ‘노동’이다. 번역판 부제로 붙은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는 애초 영문판의 제목이었다. 지은이는 이렇게 묻는다. “상품을 소비하지 않으면, 직장에 고용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인간이냐”고.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