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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80년 시간을 뛰어넘어 생기 넘치는 언어

등록 2014-11-06 20:11

그림 실천문학사 제공
그림 실천문학사 제공
월북 시인 오장환 동시집
도종환 시인 엮고 그림 곁들여
부엉이는 부끄럼쟁이
오장환 글, 도종환 엮음, 곽명주 그림
실천문학사·1만원

“뿡-뿡-/ 자동차 하나가/ 자전거도 떼 놓고,/ 전차도 떼 놓고,/ 막 달아난다./ 자동차도 우리처럼/ 운동회엘 나가면/ 일등하겠네.”(<자동차>)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서 그 속도감을 운동회의 달리기 시합에 연결시키는 이 해맑은 상상은 누구의 것일까. 모더니즘, 현실 참여 등의 묵직한 열쇳말로 알려져 있던 월북시인 오장환의 작품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장환은 16살이던 1934년 방정환이 만들었던 잡지 <어린이>에 동시 여러편을 발표했던 ‘소년문예가’였다. 이 동시집은 34년부터 37년까지 발표했던 동시 44편을 묶은 책이다. 오장환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한 도종환 시인이 골라 엮은 것으로, 2006년 출간된 <바다는 누가 울은 눈물인가>에 수록된 작품들에 삽화를 넣어 새로 출간했다.

“눈물은/ 바닷물처럼/ 짜구나.// 바다는/ 누가 울은/ 울음인가.”(<바다>)

첫장에 실린 <바다>는 눈물과 바닷물을 ‘짠맛’이라는 구체적이고도 단순한 연결고리로 묶은 뒤 슬픔이나 연민의 정서를 환기하는 서정적인 시다. 동시 가운데서도 초기작에 속하지만 이후의 다양한 작품으로 이어지는 감성이 담겨 있다. 도종환 시인은 머리말에서 “오장환 시인은 동시를 쓰면서 어린이는 무조건 천사라고 여기거나, 공연히 슬픈 표정을 짓거나 하지 않았”다고 썼다. 장난을 치는 아이들의 명랑함과 멀리 떠난 누나를 향한 그리움, 생일에 빈대떡을 부쳐주기 위해 엄마가 맷돌을 가는 모습을 보면서 들뜬 마음 같은 다양한 감정이 꾸밈없이 기술된다. 이 가운데서도 놀이에 관한 작품들이 많다고 도종환 시인은 분석한다.

“돌이는 숨바꼭질 하느라고 화초밭에 엎드렸다가 벌한테 쏘여도 아무 소리도 안 했습니다. 그렇지만 순이가 찾아내니까 으애-하고 울었습니다.”(<숨바꼭질>) 재미나는 놀이에 빠져 벌에 쏘이는 모진 아픔까지도 참아냈는데 지게 되어 분한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그 천진함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우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생각도 든다. 오래전 시인만큼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일부 단어나 상황은 지금과 달라 아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물고기들은/ 입을 쳐들며/ 송 송 송,/ 빗방울을 받아먹는다”(<가는비> 중)거나 “우리 우리 비행기는/ 푸릉푸릉 날아갈 테지.”(<종이비행기> 중) 등 감각적 언어들은 8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생기 넘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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