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제의 형법학>(서울법대 법학총서2)에서 사형 폐지, 성매매처벌방지법 개정 등의 문제를 건드렸다. “표를 추구하는 정치인은 회피하거나 침묵하는 주제이니 정치인 재목은 못된다”고 말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조국 서울대 교수 인터뷰
조국 지음/박영사·2만5000원 2012년 12월20일. 전날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승리한 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동안거’를 선언했다. 연구서 집필에만 집중하겠다는 것이었다. 딱 2년이 지난 지금 그 책이 세상에 나왔다. <절제의 형법학>이다. 무려 600쪽. 내용은 더 무겁다.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형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사형폐지를 주장하고, 존속살해죄 가중처벌을 비판했다. 군인간 합의동성애 처벌에 반대하고 국가보안법 문제,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 등 논란이 뜨거운 의제만 다뤘다. 주류의 ‘법 감정’과도 거리를 둔다. 낙태 비범죄화를 옹호하고 간통 폐지론을 편다. 짐작대로 ‘정론직필’이라, 양비론의 다른 학술서들과 차이가 있다. 16일 학교 연구실에서 ‘학자 조국’을 만났다. “우리나라는 형벌만능주의, 중형·엄벌주의 국가다. 형법을 통해 특정 도덕이나 사상을 강요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헌법적 기본권을 제약·억압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 책은 국가 형벌권의 남용을 꾸짖는다. 헌법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평소엔 ‘질서’보다 ‘자유’와 ‘행복’을 중시하고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위하여” 형법의 개입을 저지한다는 것이 헌법 정신이다. 지은이의 사상은 이처럼 ‘절제의 형법학’ ‘겸억(신중·자제)의 형법학’이란 개념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체제 유지 방편으로 형법을 손쉽게 사용했다. 형벌권은 국가의 이데올로기를 유지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청개구리 형법’이다. 강간·기업범죄 등 강력하게 개입해야 할 부분에서는 형법이 무력한데, 시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표현과 신체의 자유를 억압할 때는 강하게 개입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차기작 <개입의 형법학>도 벌써 쓰기 시작했다. 종합하면, 절제와 개입. 이것이 우리나라 형법의 ‘2대 문제’다. 사형·존속살해·보안법·성매매
대법원 판례 변경·개정 주장
“다음 대선 때도 정치 개입” “형법은 칼이다.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해 다른 제재수단이 없는 경우에만 써야 한다. 살인, 강간, 기업의 횡령, 배임은 사회적 유해성이 명백하다. 강하게 개입해야 한다. 각종 표현의 자유, 동성애, 간통, 음란물 문제 등에서는 발을 빼야 한다.” 절제되지 않는 형법은 예외 상태의 ‘벌거벗은 생명’(호모 사케르)을 양산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들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기업의 고소·고발에 시달리는 노동자, 비정규직, 동성애자 등 배제된 이들을 ‘호모 사케르’라 부르는 이유다. 특히 요즘은 ‘종북’ ‘좌빨’에 대한 낙인이 무서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전면 개정, 특히 제7조 찬양·고무죄의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실제 ‘주사파’가 있을 수 있다. 예민하지만 그 역시 토론의 문제다. 공중파에서 ‘끝장 토론’을 한다고 해보자. 시민들이 김정은 체제 옹호론에 설득당할까? 나는 그런 위험성이 낮다고 본다. 이 문제는 체제의 자신감과도 관련이 있다.” ‘종북 콘서트’라고 보수 언론이 꼬리표를 단 신은미씨의 행사에서 벌어진 고교생 ‘황산 테러’는 어떨까? “신씨의 발언은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고, ‘명백히 현존하는 위험’이 없어 형법이 개입하면 안 되지만, 황산 테러는 명백하고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하는 반사회적 행위이므로 형법이 개입해야 한다.” 19일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는 통합진보당 해산청구건에 대해서도 “아르오(RO) 등 일부를 통진당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비판은 정당해산이 아니라 토론과 선거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내란, 간첩 등 구체적 체제전복 행위가 수반되지 않은 정당 활동은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 있고, 형법의 개입도 억제되어야 한다.” 얼마 전,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라는 단체가 조 교수에게 고발장을 보냈다. 보수쪽 단체나 인사들의 고발만 지금까지 10여건이다. 그럼에도 그는 ‘형법 절제’를 주장해 맞고소에 반대한다. 동료 교수들은 ‘스스로 발목을 잡는다’고 표현했다. “형벌권 과잉은 진보건 보수건 누가 주장하건 언제나 경계대상이며 민주공화국에 위해 요소가 된다. 형법은 양날의 칼이다. 내가 쓸 땐 좋지만,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 논쟁으로 먼저 해결하고 검증해야 한다.” 그는 이번 책에서 특히 쟁의 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을 독자들이 주의깊게 읽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당한 쟁의행위의 목적과 수단에 대해 대법원이 기업(사용자)의 입장을 훨씬 더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형법이 형해화하는 판례가 계속 나온다”고 우려했다. “반 노동사회, 살 노동사회다.” 고집 때문인지, ‘조국’이란 이름 탓인지, ‘외모’ 덕인지 1987년 대학원에서 형법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스승이던 이수성 전 서울대 교수는 그에게 정치를 하거나 교수가 되라고 했다. 그 조언대로 하고 있다. 공부도 하고, 현실 정치에도 깊이 개입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후보를 도왔고, 2012년 대선엔 문재인 후보를, 올해 지방선거에서 다시 박 후보를 지지했다. “앞으로도 학문과 사회참여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미리 말하자면, 2017년 대선 때도 정치에 개입할 것이다. 공부를 하는 데 계속 스트레스가 쌓일 것 같아서 안되겠다. 개인적 행복을 위해서라도, 학문을 위해서라도 정권교체는 해야겠다. 국회의원 출마는 하지 않을 거다. 학교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니까.” 그는 스스로 개인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자 또는 개인주의자”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국’을 국회에 보낼 것인가, ‘책’을 국회로 보낼 것인가.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끝장 토론’의 주제가 될 수 있을 테고, 그 해답도 ‘절제’와 ‘개입’ 사이에 있을 것이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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