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사당동 과천연구실에서 만난 윤소영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그는 “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이나 분석도 없이 피케티 현상이나 프랑스 이데올로기가 풍미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다음 세대를 안내할 지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윤소영 교수 인터뷰
2015년. 1980년대 한국 학계를 떠들썩하게 한 ‘사회구성체 논쟁’이 촉발된 지 30년을 맞는 해다. 그 시절 ‘윤소영’이란 이름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정운영은 그에 대해 “민중민주주의 논쟁을 주도했으며 아마도 우리 사회과학계 최초로 알튀세르의 이론을 본격 소개한 ‘벤처’ 학문의 첨단주자”라고 1999년에 쓴 바 있다.
윤소영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과천연구실’은 지난해 20주년을 맞았다. 최근 펴낸 <일반화된 마르크스주의 세미나>는 이를 기념해 후배들과 함께 쓴 ‘공감개론 신서’ 13번째 책이다. 과천연구실 연구결과에 대한 안내서이자 일종의 연구 궤적을 그린 ‘지도’다.
이 연구실은 1994년 과천에서 문을 열었다가 1년 뒤 사당으로 옮겼지만 ‘과학과 실천’이라는 뜻을 살려 ‘과천’이란 이름을 유지했다. 위치도 그대로다. 바뀐 건 사람뿐이다. 40~50여명의 연구자를 배출한 이곳에 드나드는 이들은 6~7명 정도. 마르크스주의 연구 퇴조와 더불어 멤버가 한창 때의 절반으로 줄었다. 1954년생으로 40대였던 윤 교수도 60대가 됐다. 재작년 말엔 심장 수술을 받았다. “술·담배를 끊어 세미나 뒤풀이 재미가 사라졌다”며 그는 웃었다.
“20년 동안 50권의 책을 펴냈다. ‘마르크스주의의 전화와 일반화’를 위한 중장기적인 이론 연구를 해보자는 목적이었다. 우리 작업은 공자의 말씀처럼 ‘일이관지’(하나로 꿰뚫는다, 일관성을 유지한다)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연구실의 작업은 1991년 소련 붕괴와 맞물려 있다. 이론의 혼란과 운동의 쇠퇴 속에 ‘마르크스주의의 쇄신’을 목표로 삼았다. “운동 전체에 대해서는 책임을 못져도 이론 만큼은 마르크스주의가 소멸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이론적 기획은 루이 알튀세르(1918~1990)의 ‘전화’ 개념과 에티엔 발리바르(1942~)의 용어인 ‘일반화’에서 따왔다. 두 용어 모두 쇄신, 개조의 의미를 지닌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윤 교수는 물리과학을 참조했다. 뉴턴의 중력이론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력 분석으로 발전했듯 과천연구실의 ‘일반화’란 말에도 마르크스주의를 개조하며 자본주의 분석을 정교하게 해보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연구는 ‘역사과학으로서 경제학 비판’과 ‘인권의 정치로서 이데올로기 비판’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끌어갔다. 마르크스주의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이론을 진전시켜 보려 한 것이다. 계급모순 못지 않은 성별모순에도 관심을 기울여 페미니즘이 주장한 ‘차이의 정치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궤적을 보면, 과천연구실의 ‘일반화’ 이론은 따라서 알튀세르, 발리바르를 그대로 계승하기보다 독자적인 방향으로 새롭게 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80년대 ‘민중민주’ 대표 이론가
‘마르크스주의 일반화’ 한길 20년
“운동과 재결합 잘 안돼 아쉬워” 윤 교수는 좌파 이론가들과 ‘맞짱’ 뜨는 사람으로 이름높다. 고집도 세고, ‘까칠’하며, 에너지 넘치는 다변가다. 그는 1985년 박현채 선생이 <창작과비평>에서 장을 열었던 한국사회성격논쟁(사회구성체 논쟁)을 이어받아 ‘피디론’을 발전시켰다. 이 논쟁은 진행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 논의와 정통성 시비로 흘렀다는 부정적 평가와 우리 사회의 성격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규명하려는 지적 운동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정문길, <한국마르크스학의 지평>) 한국 지식인 사회 전체가 가담하다시피 떠들썩한 논쟁이었고 이에 참여한 좌파들은 끝없이 차이와 정파를 만들어냈다. 윤 교수는 “당시는 젊어 사소한 차이를 과장했던 경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했다. 1988년 창간한 <현실과 과학>, 한국사회경제학회, <이론>(1992년 창간) 동인지 활동까지 활발하게 펼치던 그는 1990년대 초중반 이후 서서히 동료 좌파 학자들과 결별했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실명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비판에 반비판으로 맞섰다. 그는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핵심세력이 ‘지배 엘리트’로 변신을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변천도 그 맥락에 놓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또한 주류화를 지향함으로써 운동성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시민운동도 사상 없는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라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가 절대지식이 될 수는 없다. 좌파 사상이나 운동을 너무 종교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주의에 한계가 있다는 내 생각은 원래의 ‘과학적 목표’에 다가가려 함이지, 이를 버리는 게 아니다.”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의 결정적 취약점으론 국가보안법 말고 연구기관이 부족하다는 것도 있다. 여전히 좌파들 사이에 그의 주장을 놓고 이견들이 있지만, 과천연구실이 마르크스주의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비판하며 20년 동안 꾸준히 ‘학파’로서 생존해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아쉬움도 있다며, “운동과 재결합하려 했지만 잘 안 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 흘러온 방향은 옳다고 생각하는데, 왜 대중에게 잘 수용되지 않을까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사회성격논쟁을 벌인 지 한 세대가 흘렀다. 윤 교수는 “이제 한국자본주의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1980년대 학문의 지평을 넓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공룡처럼 갑자기 사라질지, 새 전기를 맞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튀세르의 표현대로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의 상징적인 드로잉과 함께 과천연구실이 펴낸 책 50여권 표지를 20년 동안 일관되게 장식해온 글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마르크스주의 일반화’ 한길 20년
“운동과 재결합 잘 안돼 아쉬워” 윤 교수는 좌파 이론가들과 ‘맞짱’ 뜨는 사람으로 이름높다. 고집도 세고, ‘까칠’하며, 에너지 넘치는 다변가다. 그는 1985년 박현채 선생이 <창작과비평>에서 장을 열었던 한국사회성격논쟁(사회구성체 논쟁)을 이어받아 ‘피디론’을 발전시켰다. 이 논쟁은 진행 과정에서 추상적이고 관념적 논의와 정통성 시비로 흘렀다는 부정적 평가와 우리 사회의 성격을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규명하려는 지적 운동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정문길, <한국마르크스학의 지평>) 한국 지식인 사회 전체가 가담하다시피 떠들썩한 논쟁이었고 이에 참여한 좌파들은 끝없이 차이와 정파를 만들어냈다. 윤 교수는 “당시는 젊어 사소한 차이를 과장했던 경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했다. 1988년 창간한 <현실과 과학>, 한국사회경제학회, <이론>(1992년 창간) 동인지 활동까지 활발하게 펼치던 그는 1990년대 초중반 이후 서서히 동료 좌파 학자들과 결별했다. 한국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실명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비판에 반비판으로 맞섰다. 그는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 가운데 핵심세력이 ‘지배 엘리트’로 변신을 시도했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의 변천도 그 맥락에 놓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 또한 주류화를 지향함으로써 운동성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시민운동도 사상 없는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라며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가 절대지식이 될 수는 없다. 좌파 사상이나 운동을 너무 종교처럼 생각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르크스주의에 한계가 있다는 내 생각은 원래의 ‘과학적 목표’에 다가가려 함이지, 이를 버리는 게 아니다.” 한국의 마르크스 연구의 결정적 취약점으론 국가보안법 말고 연구기관이 부족하다는 것도 있다. 여전히 좌파들 사이에 그의 주장을 놓고 이견들이 있지만, 과천연구실이 마르크스주의를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신자유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를 비판하며 20년 동안 꾸준히 ‘학파’로서 생존해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아쉬움도 있다며, “운동과 재결합하려 했지만 잘 안 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지금까지 흘러온 방향은 옳다고 생각하는데, 왜 대중에게 잘 수용되지 않을까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사회성격논쟁을 벌인 지 한 세대가 흘렀다. 윤 교수는 “이제 한국자본주의가 어디쯤 가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1980년대 학문의 지평을 넓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공룡처럼 갑자기 사라질지, 새 전기를 맞을지 아직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알튀세르의 표현대로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다. 알튀세르의 상징적인 드로잉과 함께 과천연구실이 펴낸 책 50여권 표지를 20년 동안 일관되게 장식해온 글귀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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