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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세계적 작가들의 문학세계를 육성으로 만나다

등록 2015-01-15 20:31

영문 계간 문예지 <파리 리뷰>가 세계적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번역한 <작가란 무엇인가> 2·3권이 나왔다. 그림은 왼쪽부터 줄리언 반스, 커트 보네거트, 스티븐 킹, 오에 겐자부로, 수전 손택. 그림 다른 제공
영문 계간 문예지 <파리 리뷰>가 세계적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를 번역한 <작가란 무엇인가> 2·3권이 나왔다. 그림은 왼쪽부터 줄리언 반스, 커트 보네거트, 스티븐 킹, 오에 겐자부로, 수전 손택. 그림 다른 제공
보르헤스 보네거트 손택 등
<파리 리뷰>인터뷰 작가 24명
활자문화 위기 속 문학 구실 고민
작가란 무엇인가 2, 3
<파리 리뷰>지음
김진아·권승혁·김율희 옮김
다른·각 권 2만2000원

‘소설가들의 소설가를 인터뷰하다’라는 부제를 달고 지난해 1월에 나온 <작가란 무엇인가>는 인문서로는 드물게 1만부 넘게 팔리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문학 계간 <파리 리뷰>에 실린 작가 인터뷰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 무라카미 하루키, 어니스트 헤밍웨이, 밀란 쿤데라 등 열두 작가 편을 번역한 책이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두루 인정받은 세계적 작가들과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10여년에 걸쳐 행한 밀도 높은 인터뷰를 통해 해당 작가의 문학 세계와 인간적 면모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1권의 ‘흥행’에 고무받아 새로 나온 <작가란 무엇인가> 2권과 3권 역시 같은 잡지에 실렸던 작가 인터뷰 12편씩을 담았다.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는 “진실을 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문학을 규정한다. “단순히 사실을 합쳤을 때보다 더 많은 진실을 말해주는,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정돈된 거짓말”이 문학이라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라는 부연설명이 돌아온다. 소설을 쓰기 전에 사전 편집자와 평론가, 기자 등의 이력을 거친 그는 “소설을 쓸 때보다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더 적게 말한 것 같다”고 토로한다. 일주일 내내 일하며 주말과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하기를 특히 즐긴다는 그는 행복한 작가다.

철학적이며 형이상학적인 문학 세계로 유명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평범한 단어”로 “평이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소설을 지향한다. 자신의 소설이 냉정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평에는 “저는 그 소설들을 쓸 때 깊은 감정을 느꼈”으며 “그 소설들은 모두 저 자신에 대한 것 (…) 개인적 경험에 대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2차대전 막바지 독일군에 포로로 잡힌 상태에서 겪은 미군의 드레스덴 공습을 그린 소설 <제5도살장>의 작가 커트 보네거트(보니것)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시종 쾌활하게 인터뷰에 응한다. 그는 민간인 13만명의 희생을 불러온 드레스덴 공습이 전쟁을 단축시키거나 독일군을 약화시키는 등의 효과는 전혀 거두지 못했고 “지구상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그 공습으로 이득을 봤다”고 주장한다. “책을 씀으로써 사망자 한 사람당 3달러씩 받은 셈”인 자신이 그 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이 유쾌한 작가조차 자신의 소설이 혹평을 받았을 때 “다시 전쟁통의 화물열차에서 서서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풍토에 대한 해법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일을 그만두는 모든 사람에게 복지수표를 수령하기 전에 반드시 독서록을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은 영락없는 보네거트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은 “제 책은 모두 오락물”이라면서도 대중문학을 홀대하는 풍토에는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한다. 그가 보기에 “지금은 미국 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옛날 방식인 책이 공격받고 있”기 때문이다. 활자문화 자체가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진지한 대중소설에 문을 걸어 잠그면 진지한 소설가들에게도 문을 닫아버리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1994년에 일본 정부가 주는 문화훈장은 천황제 반대 취지로 거부한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소박한 민주주의자로서 글을 쓴다”는 말로 겸손하면서도 단호한 정치적 견해를 밝힌다. “작가가 이런저런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중요치 않다”는 보르헤스의 말이 그에 맞서는 형국이다. 혁명 러시아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는 미국인이 확실하다”며 한술 더 떠 “외교정책에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미국 정부의 편”이라고 강조한다. 그의 인터뷰가 이루어진 1967년 무렵 미국이 베트남과 남아메리카 등지에서 저지른 패악을 생각하면 그다지 균형 잡힌 발언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작가란 세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을 그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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