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밀입국한 아프리카 청년 삼바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땅에서 살아남고 꿈을 이루고자 분투한다. 소설 <웰컴, 삼바>를 각색한 같은 이름의 영화가 다음달 한국에서 개봉된다. 영화사 ‘하늘’ 제공
[책과 생각]
‘부정’의 존재로 버텨야 하는…
경제의 밑돌 격 이주노동자
‘샤를리’ 테러와 소수의 목소리
‘부정’의 존재로 버텨야 하는…
경제의 밑돌 격 이주노동자
‘샤를리’ 테러와 소수의 목소리
델핀 쿨랭 지음, 이상해 옮김
열린책들·1만2800원 “공식적으로는 채용이 안 되는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프랑스 경제 전체가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쓰기 편하고 풍부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그들은 지하 프랑스에서 거리를 청소하고, 쓰레기를 분류하고, 노인네의 똥을 닦아 주고, 밤에 사무실 바닥을 청소했다.” ‘그들’이란 누구인가. 아프리카와 서남아시아, 베트남 등지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비합법 이주노동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프랑스’를 ‘한국’으로 바꿔 놓으면 그들은 또한 이 땅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연변과 동남아와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을 가리키게도 된다. 프랑스 소설 <웰컴, 삼바>는 이렇듯 21세기 지구촌 공통의 현실인 노동력 이주 문제를 다룸으로써 보편적 호소력을 지닌다. 아프리카 말리 태생인 주인공 삼바 시세는 건설 공사장에서 사고를 당한 아버지가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죽는 모습을 하릴없이 지켜보면서 “다른 나라, 프랑스를 꿈꾸기 시작했다.” 소설은 프랑스에 벌써 10년 넘게 체류하면서 이 나라 경제의 일익을 담당해 온 그가 돌연 불법체류자로 체포되는 장면으로 문을 연다. 당연히 받을 것으로 짐작했던 체류증을 얻고자 경찰서에 출두했다가 추방 위기에 몰린 그가 법률과 체제의 논리에 온몸으로 맞서다가 좌절하는 대목은 카프카적 부조리의 세계를 닮았다. 그런 그를 난민 지원 시민단체의 자원봉사자인 백인 여성 ‘나’가 돕기로 한다. “난 프랑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요. 자유, 혁명, 문화, 인권의 나라요. 난 나도 모르게 그것에 애착을 갖고 있었어요. 프랑스가 그 이미지에 못 미치면, 난 부끄러워요.” 그런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삼바를 비롯해서 추방 위기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일에 나서도록 한다. 그 노력이 부분적인 성과로 이어져서, 삼바는 당장의 추방 위험에서 벗어나고 갇혀 있던 유치장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당국의 결정은 그의 ‘자발적 귀국’. 체류증이 없는 그가 프랑스에 남을 수 있는 길은 경찰의 단속을 피해 가면서 편법으로 일을 하는 것뿐이다. 그 과정에서 삼바는 처음에는 동거하는 삼촌의 이름을 빌려 쓰고,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급기야는 남의 신분증을 훔치기에 이른다. 그 일을 가리켜 그는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당국이 내세우는 정의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가 일치하지 않으며 자신은 프랑스 정부의 정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아래의 인용은 삼바와 프랑스 정부의 정의가 어긋나게 된 배경과 그 파장을 산뜻하게 설명한다. “그는 오로지 부정적으로만 정의되었다. 그에게는 신분증이 ‘없다’. 그는 프랑스인이 ‘아니다’. 그는 백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의 부정이었다. 하지만 그는 거울이기도 했다. 그를 보면 프랑스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었다.” 부정의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는 남의 신분으로 일을 하던 현장에서 단속 경찰을 피해 도망쳐야 하는가 하면, 매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음식을 주워 먹거나 그것을 다시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치장 동료의 여자친구를 상대로 잠깐 사랑과 행복의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 역시 파국으로 끝나고, 삼바는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선다. “그는 늘 달아나는, 모든 것에 대항해, 무엇보다 미리 그어진 운명에 대항해 일어서는 수직의 실루엣이다. (…) 그는 운명을 지배하고, 우연에 맞선다.” 프랑스를 사랑하는 ‘애국자’ 삼바가 도망자의 신분으로 새 출발을 꾀해야 하는 결말은 희망과 절망의 두 얼굴을 지닌다. 인권과 박애의 프랑스가 아닌 차별과 배척의 프랑스를 향해 발하는 삼바의 경고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의 배후에 있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와 겹쳐 들리는 느낌도 든다. “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젠가 당신들이 무시하고 내친 사람들에게 쌓인 슬픔이 당신들의 나라를 가득 메우고, 당신들의 행복을 오염시킬 거라고. 그들의 떠도는 영혼이 당신들 주변에서 배회하는 것을 느끼게 될 거라고. 당신들도 오래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세상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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