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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기자실 “이사가라-싫다” 엉뚱한 진통

등록 2005-09-29 16:42수정 2005-09-30 16:53

단일 출입처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 정치기사의 산실인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회견이 열린다. 이종찬 기자 <A href="mailto:rhee@hani.co.kr">rhee@hani.co.kr</A>
단일 출입처로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기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실. 정치기사의 산실인 국회 기자회견장에서는 하루 평균 10건 이상의 회견이 열린다. 이종찬 기자 rhee@hani.co.kr
의원수 5배 넘는 1600명 출입기자
본관 한켠 기자실서 바글바글
하루 10여번 뉴스 쏟아내는 ‘장’이 선다
국회 쪽이 아래층으로 옮기려 공고
“왜 지하로 처박나” 기자들 반발
지상구조 ‘지하층’을 ‘1층’으로 바꾸나
건물을 그대론데 6층이 7층 둔갑

현장속 현장

대한민국 국회의원은 299명이다. 국회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다섯배가 넘는 1600명이다. 단일 출입처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 가면 파란색 출입증을 가슴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쉽게 눈에 띄는데, 이들이 바로 국회 출입 기자들이다.

기자들은 국회 본관 2층 북동쪽에 주로 머문다. 국회 기자실이다. 본래 이 곳은 1층이었는데, 최근에 갑자기 2층이 됐다. 기자실을 옮긴 것이 아니라, 1층이 통째로 2층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나중에 설명하자.

정치부 정당팀 기자들이 쓰는 기사의 상당 부분이 바로 국회 기자실에서 나온다. ‘정치 기사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다. 기자실은 크게 회견장과 부스로 나뉜다. 회견장은 국회가 열려 있을 때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루에 평균 10건 이상의 회견이나 브리핑이 열린다. 너무 많아서 통계도 잘 잡히지 않을 정도다.

회견장의 일상을 살펴보자. 지난 9월13일 오전 9시35분. 임채정 우원식 유기홍 이목희 등 열린우리당 서울시 지역구 의원 8명이 시세인 담배소비세를 구세로, 구세인 재산세를 시세로 맞바꾸는 세목교환을 설명하기 위해 단상에 섰다. 임채정 의원이 준비한 문안을 낭독한 뒤, 우원식 의원이 보충설명을 했다. 회견장 안에는 기자들 20여명이 앉아 있었고, 텔레비전 방송 카메라가 회견 장면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회견장 밖에서는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이 순서를 기다리며 몇몇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9시50분.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열린우리당의 정장선 오영식 의원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밖에서 기다리던 전여옥 대변인은 “저 분들이 먼저 온 것 같다”며 순순히 한나라당 사무실로 돌아갔다. 먼저 온 사람이 회견장을 먼저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장선 의원은 재경 당정회의 결과를 간단히 설명하고 회견장을 나갔다. 원내 공보담당 부대표를 맡고 있는 오영식 의원이 혼자 마이크를 잡고 고위 정책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오 의원은 회견장의 단골이다. 브리핑을 마친 그는 미소를 지은채 “질문 있습니까? 없을실 겁니다”라고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는 평소 간결하고 솔직한 브리핑으로 기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9시55분. 전여옥 대변인이 들어섰다. 방송기자 출신인 전 대변인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주요당직자회의 내용을 브리핑했다. 전 대변인은 대개 같은 내용을 두번씩 읽어준다.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는 기자들을 위한 일종의 서비스다. 전 대변인이 나가자, 이번에는 민주노동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심상정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소탈하고 성실한 자세로 아침 8시에 열렸던 의원총회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심 의원도 회견장의 단골이다.

잠시도 쉴틈없는 회견장 마이크

다음날인 14일에도 회견장은 북적거렸다. 오전에만 △엑스파일 내용 공개 촉구 의원 모임 회견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의 당 정치개혁특위 브리핑 △나경원 한나라당 공보부대표 국회 상황 브리핑 △노회찬 의원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연대 단체 대표들의 회견 △대우조선 매각대책위원회 공동 기자회견 등 10건의 회견과 브리핑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오후에는 재경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증인 문제를 둘러싸고 교대로 단상에 올라 공방을 벌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이크가 고장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회견장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의 소개를 받아야 한다. 용도도 의정활동 홍보, 각 정당의 브리핑 등으로 제한돼 있다. 회견장은 뉴스를 전달하는 마당이다. 동시에 정치공세의 장이기도 하다. 뉴스인지, 정치공세인지 분별하는 사람들은 기자들이다. 여야의 정치 공방이 벌어지면 당사자들의 얼굴에는 벌겋게 열이 오르지만, 기자들은 심드렁해진다. 기사가 안되기 때문이다. 기자들, 특히 정당팀 ‘말진’들은 회견장에 죽치고 앉아 있거나, 들락날락하면서 ‘받아 쳐야’한다. 피곤한 일이다.

아래는 소속회사별로 따로 설치돼 있는 기자실 부스.
아래는 소속회사별로 따로 설치돼 있는 기자실 부스.
회견장과 별도로 기자들이 앉아서 기사를 쓰는 장소가 있다. ‘부스’다. 회견장 맞은 편에 제1, 제2 기자실, 한 층 아래에 제3 기자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기자들만의 공간이다. 각 언론사별 부스에는 국회 유선방송이 연결된 텔레비전 한 대와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하기 위한 ‘랜 선’ 등이 설치되어 있다. 회견장의 ‘소리’는 각 부스에 설치된 스피커로 전달된다. 국회 출입 기자들은 평소 부스에 ‘서식’한다. 하지만 모든 기자들에게 부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부스를 사용하려면 좌석당 월 5만원의 사용료를 내야 하고, 국회사무처에 신청을 해서 배당을 받아야 한다. 부스가 없는 기자들은 회견장에 앉아 있거나 회견장 주변을 배회한다.

1600명 규모의 국회 출입기자들을 분류하면, 상시 등록이 500명, 장기와 단기 등록이 1100명 정도 된다. 상시 등록은 6개월(창간 3년 이상인 언론사) 또는 1년(창간 3년 미만인 언론사) 이상의 출입경력과 고정된 정치·국회 관련 보도를 하는 언론사 기자들이다. 장기와 단기는 이런 요건이 안되는 경우다. 전문지나 인테넷 매체인 경우가 많다.

국회 기자실은 1975년 여의도에 국회 본관이 새로 지어질 때 만들어졌다.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준공식에 참석해 말한 첫 마디가 “기자실은 잘 돼 있는가”였다고 한다. 세종로에 있던 옛 국회의사당 건물의 기자실이 워낙 비좁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에 방 하나씩 배당된 국회 기자실 구조는 2004년까지 29년 동안 이어졌다. 지금처럼 칸막이를 친 부스 형태로 바뀐 것은 17대 국회 김원기 국회의장이 취임한 뒤다.

17대 국회는 기자들에게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까지 정치부 정당팀 기자들의 활동무대는 당사와 국회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17대 총선을 치르면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당사를 여의도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자, 기자들은 국회 기자실로 몰려들었다. 당연히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여러가지 문제가 생겼다.

최근 기자실 입구에 국회 공보관실 명의의 ‘포고령’이 붙었다. 정확히는 ‘국회 프레스센터 이전 관련 안내문’이다. “17대 국회 들어서 기자실을 리모델링해서 부스 형태로 바꾸었으나, 원내정당화와 기자들의 증가로 공간이 협소하니, 한 층 아래로 회견실과 부스를 모두 이전한다”는 내용이다.

곧장 벽 허물고 트인 부스로

국회 기자실 이전은 지난해부터 추진됐다. 김원기 의장과 남궁석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도서관 옆에 짓고 있는 지상 6층, 지하 4층짜리 서고동에 널찍한 ‘프레스 센터’를 설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반대했다. 본관 회의장과 의원회관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데, 거리가 너무 멀다는 것이었다. 김원기 의장은 고민에 빠졌다. 때마침 국회사무처가 지하 1층 창고를 치워 사무실로 쓰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김 의장은 지하 1층의 새로운 공간에 기자실을 크게 만들고 휴게실과 체력단련실도 만들어 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면적은 그리 넓어지지 않았고 체력단련실도 없어졌다. 결국 위치만 지하 1층으로 바뀌게 된 셈이다. 기자들은 “우리를 왜 지하로 쳐박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층수를 통째로 한 칸씩 올린 것이다. 국회 본관은 본래 앞쪽에서 계단을 통해 들어가면 1층이고, 뒷쪽 민원실로 들어가면 지하 1층이다. 지하 1층은 위치가 지상 1층인데도 사방이 실내주차장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창문이 없다. 어줍잖게 국회의원들의 ‘권위’를 높인답시고 건물을 그렇게 지은 것 같다. 그런 지하 1층을, “지하로 갈 수 없다”는 기자들을 달래기 위해 그냥 1층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다. 두 달 전쯤 엘리베이터 층수와 각 사무실의 번호가 모두 바뀌었다. 모든 사무실 위치가 한 층씩 ‘격상’됐다. 그 전엔 6층까지 있었는데, 7층이 새로 생겼다. 덕분에 국회를 드나드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엘리베이터 앞에서 주춤주춤하며 혼란을 겪고 있다.

기자들이 도대체 무슨 권리로 기자실 이전을 거부하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기자들의 반발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해 부스 공사를 할 때 한 달 쯤 지하 2층 강당을 임시 기자실로 사용한 적이 있는데, 많은 기자들이 호흡기 질환에 걸리는 등 고생을 한 일이 있다. ‘지하’에 대한 공포가 있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는 새 기자실에 최첨단 공기조절시스템과 방음 장치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 기자들의 의견은 대체로 두 패로 갈려 있다. 기분은 나쁘지만 권한을 가진 사람들이 결정했으면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배째라. 못간다”고 버티는 언론사와 기자들도 꽤 있다. ‘정치 기사의 산실’이 정치 기사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라, 엉뚱하게 이사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다. 성한용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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