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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희대의 과학사기극 누가 진범인가?

등록 2005-09-29 18:57수정 2005-09-30 16:56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br>
에르베르 토마 지음. 이옥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1만6500원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
에르베르 토마 지음. 이옥주 옮김. 에코리브르 펴냄. 1만6500원
1912년 발견된 인간 ‘필트다운인’ 40년 뒤 완전조작으로 드러나 당시 발견자들 모두 조사했지만 사기범 추적 여전히 미궁에
과학사의 초대형급 황당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람과 원숭이를 잇는 ‘진화적 고리’를 찾으려는 관심이 집중됐던 시절인 1912년 12월18일 런던 대영박물관의 지질학 부문 관리자인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와 변호사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인 찰스 도슨은 그 ‘잃어버린 고리’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해결할 만한 인류화석을 발굴했다고 발표했다. 원시적 턱뼈와 현세인을 닮은 두개골은 네안데르탈인보다도 인류의 직계조상에 더 가까웠다. 최초의 인간은 최초의 영국인이었다!

사건의 파국은 말그대로 황당했다. 1953년 대영박물관 연구원 케네스 오클리 등은 새로운 연대측정기법을 통해 이 인류화석이 조작된 것임을 밝혀냈다. 두개골은 겨우 몇 세기 전의 것이고 턱뼈는 최근의 오랑우탄 것이며 이빨은 일부러 줄질해 마모시킨 것이었다. 함께 발굴된 동물화석들은 외국에서 들어왔으며, 모두 정교한 화학처리를 거쳤음이 드러났다.

충격을 던진 두 장면 사이의 40여년은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바쳐진 영국의 환호, 대발견의 흥분들, 그리고는 진상규명 이후에 몰려든 허탈과 의문, 논란, 혼란의 시간들이었다. 런던 부근 필트다운 마을에서 찰스 도슨이 처음 발견한 인류화석 ‘필트다운인’은 대표적 과학사기 사건으로 기록됐다.

남은 문제는 ‘도대체 누가 이 엄청난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했는가’로 쏠렸다. 1955년 이후 숱한 추리·주장·반박들이 용의자들을 만들고 혐의를 벗겨냈지만 아직 그 범인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핵심당사자인 찰스 도슨은 사기극이 밝혀지기 전인 1916년에, 우드워드는 1944년에 이미 숨졌다.

프랑스 고생물학자인 에르베르 토마가 옛 진상조사 자료들과 관련 증언자료들을 좇아 쓴 <인류의 기원을 둘러싼 최고의 과학사기사건: 필트다운>(에코리브르 펴냄)은 1953년 이후 사기범의 용의자 선상에 올랐던 여러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추적했다. 서문을 쓴 고생물학자 이브 코팡이 내비쳤듯이, 이 책은 실제 일화를 다룬 이야기이면서도 박식한 고생물학 에세이나 기발한 탐정소설, 변조된 픽션, 얽히고 설킨 오락추리물을 닮았다. 이야기 시작에 앞서 책 머리에 정리된 ‘필트다운 사건의 주요인물(1912년 당시)’은 이런 극적 분위기를 강화해준다.

찰스 도슨. 당시 48살. 변호사인 그는 필트다운인의 최초 발견자로서 당연히 첫번째 용의자로 거론돼 그동안 논란의 인물로 다뤄져왔다. 필트다운 발굴과정에 함께 있었던 대영박물관의 아서 스미스 우드워드 박사, 그리고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예수회 신부, 게다가 ‘셜록 홈즈’의 작가 아서 코난 도일 경도 한때 중요 용의자로 떠올랐다.

지은이는 도슨의 평소 의심스런 행각을 목격했다는 여러 증언과 범죄 정황들을 소개하면서도 “그러나 아무도 그의 유죄를 증명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라며 과연 혼자 엄청난 사기극을 기획해 저지를 정도로 그는 천재사기꾼이었는가라고 반문한다. 1980년대 초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브 제이 굴드가 용의자로 지목한 테야르 신부한테도 몇 가지 중요한 의문들이 제기되지만, 지은이는 그 근거의 허술함을 따져든다.

그렇다면, 이미 범죄는 벌어졌고 등장인물들의 신원도 대체로 드러난 상황에서 과연 이 가운데 범인은 누구일까? 범죄 추리게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특정인에 혐의를 씌우기보다, 완전범죄를 꾀할 만한 지질학·해부학·고생물학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세계 여러곳의 화석뼈를 모을만한 능력을 갖춘 공범 또는 진범이 주연급 인물인 도슨의 배후에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여전히 필트다운은 미궁 속에 빠져 있다. 거기엔 ‘진실을 조작한 과학’과 ‘조작을 규명한 과학’의 두 모습이 엿보인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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