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24일 열린 ‘문학의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 토론회에서 고명철 광운대 교수(앞줄 왼쪽)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문학도서(세종도서) 선정 기준이 품고 있는 문제점’ 등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우수문학도서 기준’ 토론회서 공방
순수문학·국가경쟁력 잣대에
고명철 평론가 “퇴행적” 비판
신용목 시인 “지원 철학 부재”
문체부쪽 “최종결정된 기준 아냐…
문단 등 여론수렴 합리적 방안 낼것”
순수문학·국가경쟁력 잣대에
고명철 평론가 “퇴행적” 비판
신용목 시인 “지원 철학 부재”
문체부쪽 “최종결정된 기준 아냐…
문단 등 여론수렴 합리적 방안 낼것”
선정 기준을 둘러싸고 논란을 낳은(<한겨레> 1월27일치 26면) 세종도서 문학 부문 사업과 관련한 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도종환 의원실과 김태년 의원실이 공동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해 2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는 세종도서 사업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김일환 출판인쇄산업과장과 문학평론가 고명철 광운대 교수가 발제자로, 시인 신용목과 소설가 백가흠 그리고 이광섭 ‘문학의집·서울’ 사무국장이 토론자로 나서 열띤 공방을 벌였다. 사회는 문학평론가 서영인이 맡았다.
김일환 과장은 “문제가 된 선정 기준은 최종 결정된 게 아니라 내부 검토용이었는데 바깥으로 새나간 것”이라며 “창작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언어의 사회·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편의적으로 쓴 표현으로 혼란과 걱정을 끼쳐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과장은 “세종도서 사업이 국민 세금으로 운용되는 만큼 최소한의 공익성과 보편성을 담보할 수밖에 없다”며 “오늘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비롯해 문단과 출판계 등의 여론을 수렴해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토론자로 나선 이광섭 사무국장도 “최소한의 작품 선정에 대한 안내선은 있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국장은 “2014년 세종도서를 보면 도저히 우수 도서라고 믿을 수 없는 작품들이 여럿 들어 있다”며 “질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수요자가 있다는 점을 더 고민해 달라”는 주문을 내놓았다.
발표를 맡은 고명철 교수는 “1960년대의 이른바 순수/참여문학 논쟁을 거치면서 반공주의와 착종된 문학의 순수주의가 얼마나 퇴행적이며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인지가 입증되었다”며 새삼스럽게 ‘순수문학’을 선정 기준으로 내세운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 또 고 교수는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또 다른 선정 기준은 “문학을 시장주의와 제휴시켜 상품미학 일변도의 문학을 양산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나선 신용목 시인은 “세종도서 논란의 핵심은 예술 지원 철학의 부재”라고 못박았다. 그는 “시장 질서에 문학 예술이 굴복해야 한다는 투의 김일환 과장 발제를 듣고 비참함을 느꼈다”며 “진정한 예술은 시장 실패를 전제로 창조된다. 아니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태어난다”고 반박했다. 그는 “예술 정책을 크게 창작 지원, 매개 지원, 향유 지원으로 가를 경우 창작과 매개는 중앙부처에서, 향유는 지자체에서 주 업무로 하는 식의 역할 나누기도 생각해봄 직하다”고 제안했다. 소설가 백가흠 역시 “문제가 되는 선정 기준은 정부에 반대하는 작가들에 대한 탄압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이날 토론회를 마련한 도종환 의원은 “세종도서 선정 제외 조항 가운데 ‘일반적 시각에서 볼 때 사회 갈등을 조장할 소지가 있는 도서’ 부분도 문학의 기본 구조가 ‘갈등’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몰각한 규정”이라며 “세종도서 논란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판의 관점이 아니라 문학 고유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정 발표와 토론이 끝난 뒤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세종도서 사업에 포함된 우수 문학도서 선정 사업은 기왕에 전문성을 갖춘 기관에서 잘 꾸려오고 있었는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한국출판산업진흥원으로 이관한 것이 문제”라며 “사업 주체를 다시 바꾸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일환 과장은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역시 세종도서 사업을 집행할 역량을 지니고 있다”면서도 “오늘 발표와 토론에 나선 문인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해 조언을 듣고 수용 가능한 의견은 사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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