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두번의 자화상>을 내고 25일 한겨레신문사를 찾은 작가 전성태. “그동안 극적이고 강한 소재를 좇느라 일상을 보지 못한 느낌이 있다”며 “앞으로는 작지만 소중한 일상을 챙기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전성태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치매 어머니께 들려드린 이야기
소소한 행복과 인간다움 예찬
치매 어머니께 들려드린 이야기
소소한 행복과 인간다움 예찬
전성태 지음/창비·1만2000원 “지금껏 나는 삶이니 세계니 하는 것들을 분석하는 입장에서 소설을 써왔다. 삶이 믿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판타지의 세계에 속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믿지만 적어도 나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겪은 명백한 세계만을 그리려고 애써왔다. 내 소설에 조금의 과장이 있었더라도 그것은 삶을 포위한 현실을 명확히 그리기 위해서였다.” 전성태의 네번째 소설집 <두번의 자화상> 말미에 실린 단편 <이야기를 돌려드리다>는 이런 ‘고백’으로 문을 연다. 어디까지나 소설이므로 이것을 작가 전성태 자신의 말이라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생각과 무관한, 순전한 허구로 받아들이는 것 역시 억지스럽다 하겠다. 이 말에서, 자기 문학에 대한 전성태 자신의 평가와 반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자연스럽다. 인용문이 포함된 단편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보리밭에서 혼불을 본 일이라든가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된 예지력 또는 산 등성이를 날아서 넘는 산갈치며 백년 만에 한번 꽃을 피운다는 대꽃 등에 관한 “허황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누구에게? 치매에 걸려 아이가 된 어머니가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청자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열살이 되었든 두살이 되었든 내 얘기를 경청하리라 믿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세계에 살고 있으니까.”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책 맨 앞에 놓인 단편 <소풍>에도 나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은 치매라는 틀 또는 렌즈로 들여다본 사람과 세상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다. <소풍>에서 치매에 걸린 이는 초점화자 세호의 장모. 세호 자신의 아버지 역시 치매 상태로 요양원 신세를 지다가 몇달 전에 돌아가셨다. 오누이를 거느린 세호 부부가 장모를 모시고 소풍을 다녀오는 이야기인데, 그 과정에서 장모의 치매 발병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과 장모의 치매라는 상황만 보면 매우 어둡고 고통스러울 것이라 예상되지만 소설의 기조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사는 게 별것 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렇게 드라마 같은 한 장면이면 족했다. 저것 한컷 건지려고 새벽부터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왔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다섯시간 분량의 구질구질한 필름을 버리고 손을 터는 사람처럼 마음이 산뜻해졌다.” 지루하고 고생스러운 여행 끝에 마침내 목적지에 차가 멈추고 아이들이 숲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며 세호는 이런 상념에 잠긴다. 장모와 아이들이 네잎짜리 토끼풀을 찾으러 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작으나 충만한 행복이 지금 막 곁을 스쳐가는 걸” 느끼기도 한다. 삶과 세계를 분석하고 현실을 냉정하게 파악하려는 태도와는 다른 무언가가 여기에는 있다. 소설집에 실린 열두 단편 가운데 2014년 여름에 발표된 이 작품이 가장 최근 것이고 책 맨 앞에 놓였다는 사실은 전성태 문학의 앞길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커 보인다. 나머지 열 작품의 세계는 비교적 다채로운 편이다. 문화재급 개 밥그릇을 미끼 삼아 골동품 수집상을 농락하는 시골 할머니 이야기(<밥그릇>)처럼 유쾌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황순원 <소나기>에 대한 오마주처럼 읽히는 성장소설(<소녀들은 자라고 오빠들은 즐겁다>)도 있고, 탈북자(<로동신문>)며 이주노동자(<배웅>), 월남민(<망향의 집>), 적군 묘지(<성묘>) 같은 경계의 존재들에 눈길을 준 작품들도 있다. 광주 5·18의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다룬 작품들(<국화를 안고> <지워진 풍경>)과 생계를 위해 몸을 파는 엄마를 등장시킨 현대문학상 수상작 <낚시하는 소녀>처럼 어둡고 무거운 세계도 나온다. <성묘>에서 전방 부대 입구의 작은 가게를 하며 적군 묘지를 관리하는 늙은 퇴역 군인은 이런 고민을 곱씹는다. “군인으로서, 시민으로서 왠지 감당이 안 되지만, 그러나 은밀하게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이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인간적인가? 그래서 나는 사람인가? 그는 이런 수수께끼 같은 질문에 거듭 시달렸다.” 대놓고 자랑하거나 거꾸로 부끄러워할 일도 아니지만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하는 일들 그리고 그 일들에 깃든 인간적 가치를 놓지 않는 것, 그것이 <소풍> 이후 전성태 소설이 나아갈 방향이 아닐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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