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때문에 학교를 중퇴하고 집에만 있자니 할 수 있는 게 텔레비전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다행히 텔레비전보다는 책 쪽에 흥미가 더 있었어요. 남들의 책을 읽고 흉내내서 쓰다 보니까 어느덧 제가 작가가 되어 있더군요. 글이 막히거나 책이 안 팔릴 때면 다른 직업을 찾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글쓰기 말고 제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고요.”
제11회 세계문학상을 받은 김근우(35·사진)씨는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신경계 이상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아홉번에 걸쳐 수술을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던 그는 1996년 판타지 소설 <바람의 마도사>를 피시통신 게시판에 연재하고 책으로 펴내 10만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비록 출판사 대표의 농간으로 인세를 제대로 챙겨 받지 못했지만, 독자들의 호평을 받으며 판타지 소설 붐을 이끌기도 했다.
<바람의 마도사>를 비롯해 장르소설 6종 30여권을 펴낸 그가 본격문학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3년여 전부터였다. 몇번 공모에 응모했지만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들었던 그가 마침내 장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로 7천만원 고료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움켜쥐었다. 책을 펴내고 3일 낮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반평생’ 글을 써 온 보람을 마침내 찾은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장르소설이든 본격소설이든 가리지 않고 ‘김근우만의 색깔’이 있는 소설을 쓰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서울 불광천에 사는 오리가 잡아먹었다고 주장하는 노인의 청으로 ‘범인 오리’를 찾는 남녀를 등장시킨 소설이다.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는다는 엉뚱한 발상에다가 노인과 그 아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진짜’와 ‘가짜’에 대한 고민을 얹었다. 불광천 가까이에 살며 매일이다시피 천변을 산책한다는 작가는 “불광천에서 지겹도록 마주치는 오리들과 이따금씩 고양이를 산책시키는 시민을 보고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나는 진짜 소설을 쓰고 싶었다. 남들이 말하는 진짜가 아니라 나의 진짜를 쓰고 싶었다. 나의 진짜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문학 언저리에서 노니는 사람들일수록 장르소설 따위는 숫제 소설의 범주에도 들어갈 수 없는 잡문인지라 논할 가치도 없다고 주장했다. (…) 문학을 신줏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사람들은 우습게 여길지 모르겠으나, 장르소설을 쓰는 데에도 재능이 필요하다.”(45쪽)
이 소설 남자 주인공인 장르소설가의 이런 상념은 작가 김근우 자신의 고민과 항변을 대변한다. “장르문학에서는 이야기의 재미가 중요한 반면, 본격문학은 언어 예술인 만큼, 언어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의 가장 큰 차이라 생각한다”는 그는 “장르냐 본격이냐보다 중요한 것은 ‘진짜’ 소설이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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