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에피소드로 함께 읽기
차기태 지음/필맥·2만5000원 두 시인이 저승을 순례한다. “인생의 중반기에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지옥편 제1곡) 서른다섯 젊은 시인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건 부활절을 이틀 앞둔 금요일이었다. 그 앞에 그가 스승처럼 존경하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불가능한 여행의 제안에 멈칫하는 단테에게, 스승은 이것이 그가 평생 잊지 못하던 연인 베아트리체의 뜻이라고 전한다. 지옥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유명한 <신곡>이지만, 원제가 ‘희극’(라 디비나 코메디아, La Divina Comedia)인 이유는 아마도 여기 있을 것이다. 지옥에서 출발하지만 영원한 연인이 인도하는 빛의 천국으로 도달하는 길이기에. 하지만 이처럼 낭만적인 ‘신곡’의 진입로는 그다지 평탄치 않았다. 등장하는 신화와 성서의 장면, 역사적 사건, 철학·신학적 개념이 방대할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황을 모른다면 깊게 읽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은이는 신곡 읽기의 길잡이, 곧 독자의 베르길리우스를 자처한다. “의욕은 있지만 시간과 여유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지은이의 의도처럼 책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간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구분된 원작을 상부지옥과 하부지옥처럼 상하부로 나누어 친절히 설명한 점이 새롭다. 지은이는 단테가 갖고 있는 중세 기독교적 시각의 한계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지적한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이단자들과 같이 불길에 휩싸인 구덩이에 있는 것은 ‘부당한 대접’이라는 것이다. 단지 예수 출현 이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을 ‘림보’라는 지옥에 묶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고대 서사시, 성서까지 종횡무진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읽어도 숨이 차오른다. 다행히 책은 그림 인심이 후하다.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들을 적절하게 실어 생동감을 살렸다. 유황불에 태워지는 고리대금업자들, 거꾸로 처박힌 성직자들, 뜨거운 역청에 담겨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의 모습은 700년이 더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현실이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의 생애는 마치 거칠고 요동하는 시와 같다. 천국은 언감생심이고, 연옥보다도 지옥에 더 가깝다”고 했다. <신곡>은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며 완성한 작품이었지만, 각 편의 맨 마지막 시는 ‘별’(stelle)이라는 단어로 끝을 맺는다. 질곡의 인생에서도 마지막까지 이상을 지켰던 단테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에피소드로 함께 읽기
차기태 지음/필맥·2만5000원 두 시인이 저승을 순례한다. “인생의 중반기에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 속을 헤매고 있었다.”(지옥편 제1곡) 서른다섯 젊은 시인 단테가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고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건 부활절을 이틀 앞둔 금요일이었다. 그 앞에 그가 스승처럼 존경하던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그들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 불가능한 여행의 제안에 멈칫하는 단테에게, 스승은 이것이 그가 평생 잊지 못하던 연인 베아트리체의 뜻이라고 전한다. 지옥에 대한 생생한 묘사로 유명한 <신곡>이지만, 원제가 ‘희극’(라 디비나 코메디아, La Divina Comedia)인 이유는 아마도 여기 있을 것이다. 지옥에서 출발하지만 영원한 연인이 인도하는 빛의 천국으로 도달하는 길이기에. 하지만 이처럼 낭만적인 ‘신곡’의 진입로는 그다지 평탄치 않았다. 등장하는 신화와 성서의 장면, 역사적 사건, 철학·신학적 개념이 방대할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상황을 모른다면 깊게 읽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지은이는 신곡 읽기의 길잡이, 곧 독자의 베르길리우스를 자처한다. “의욕은 있지만 시간과 여유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썼다”는 지은이의 의도처럼 책은 생각보다 쉽게 넘어간다. 지옥, 연옥, 천국으로 구분된 원작을 상부지옥과 하부지옥처럼 상하부로 나누어 친절히 설명한 점이 새롭다. 지은이는 단테가 갖고 있는 중세 기독교적 시각의 한계에 대해서도 서슴없이 지적한다.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이단자들과 같이 불길에 휩싸인 구덩이에 있는 것은 ‘부당한 대접’이라는 것이다. 단지 예수 출현 이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철학자들을 ‘림보’라는 지옥에 묶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그야말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부터 고대 서사시, 성서까지 종횡무진 에피소드들을 따라가다 보면 낯선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읽어도 숨이 차오른다. 다행히 책은 그림 인심이 후하다.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의 작품들을 적절하게 실어 생동감을 살렸다. 유황불에 태워지는 고리대금업자들, 거꾸로 처박힌 성직자들, 뜨거운 역청에 담겨 삶아지는 탐관오리들의 모습은 700년이 더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 현실이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은 “단테의 생애는 마치 거칠고 요동하는 시와 같다. 천국은 언감생심이고, 연옥보다도 지옥에 더 가깝다”고 했다. <신곡>은 단테가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하며 완성한 작품이었지만, 각 편의 맨 마지막 시는 ‘별’(stelle)이라는 단어로 끝을 맺는다. 질곡의 인생에서도 마지막까지 이상을 지켰던 단테의 면모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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