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방금 나온 <역사용어사전>을 펼쳐 들고 기뻐하고 있다. 필자 300여명이 9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2136쪽 분량으로 1500여개의 용어를 집대성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편찬책임자 최갑수 서울대 교수 인터뷰
총 28권의 <백과사전>(1751~1772)을 편찬한 프랑스 철학자 드니 디드로(1713~84)는 ‘백과사전’을 “지식의 연쇄”로 정의했다. 사전이란 지식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동시대인들에게 제시하며, 후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 얘기다. 더욱이 학계의 전문 용어와 개념은 정확하고 명료하게 정리했을 때 비로소 지식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
역사학 분야에서 디드로의 <백과사전>을 연상하게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용어사전이 나왔다. 서울대학교 역사연구소(소장 주경철)가 9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2136쪽 분량으로 펴낸 <역사용어사전>(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이다. 19일 오후 서울대학교 인문대 연구실에서 ‘따끈따끈한’ 초판을 받아든 편찬 책임자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것이 지금 막 나온 1호 책입니다. 이 두꺼운 책을 집필하고 편집하느라 편찬진이 적잖이 애를 먹었어요.”
이 책은 1945년 해방 이후 60년 동안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축적해온 연구성과를 모아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 교수는 “한국사·동양사·서양사 분과학문 체제 안에서 사용하는 역사용어와 개념을 점검하고 더 정리된 안을 제시하자는 것이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사전 편찬작업은 지난 2006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시작했다. 젊은 소장학자부터 원로들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역사학계 전문가들이 역사 서술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1500여개의 용어를 집대성했다. 역사학계 원로들이 중심이 된 항목선정위원회, 중진 교수들이 모인 편집위원회, 소장학자를 위주로 서술 원칙과 편찬방향을 정하는 기획위원회를 따로 가동했고 집필진은 총 300여명에 이르렀다.
역사학 분야 국내 첫 용어사전
9년간 대장정…집필진만 300여명
2136쪽에 1500여개 용어 집대성
한국사·동양사·서양사마다
개념·용어 달라 세심한 조정
“비교사적으로 서술한 만큼
학제간 연구 위한 기초 이뤄” 사전의 표제어는 대·중·소로 나뉜다. 대항목은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용어인 △민족주의 △근대국가 △봉건제 △중화질서 등 45개 개념을 뽑아 200자 원고지 100여장 분량 안팎으로 서술했고 중항목은 각 20장 안팎, 소항목은 5장 안팎으로 써서 묶었다. 서양사에서 나온 근대적 개념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항목은 서양사 쪽이 많았지만 각 영역에 따라 개념과 용어가 다른 것도 다수여서 세심한 조정이 필요했다. 편찬팀 전임연구원 최진묵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농민운동의 경우 동양사나 서양사는 ‘농민봉기’로 표현하지만 한국사는 ‘농민항쟁’이라고 한다. ‘아나키즘’은 동양사와 한국사에서 쓰지만 서로 결이 다르고, 동양사에서는 ‘무정부주의’로 쓴다”고 밝혔다. 결국 괄호 안에 해당 분야를 써서 표시하고 각각 뜻을 밝히는 식으로 사전을 구성했다. ‘농민봉기(서)’ ‘아나키즘(한)’이라고 적고 분야마다 뜻을 각각 설명해주는 식이다. “집필 원고를 가다듬을 때도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일본식 표현이나 최근 나라 밖의 학계 연구에서 보이는 낯선 용어들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적절하게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학자들이 전공이나 개인 선호도에 따라 달리 이해하고 사용하던 용어들의 개념을 바로잡고, 학문적 통일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 교수는 일반 독자들의 역사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출판전문가들이 책 가격을 20만원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15만원대로 책값을 결정한 것도 대중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비교사적으로 사전을 서술한 만큼, 이제 학제간 연구를 촉진하는 기초적인 작업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는 사건, 지명, 인명, 사료용어 등을 포함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역사대사전>을 만들고자 할 때는 제대로 된 예산과 작업 기간이 필요하겠지요.” 이 사전이 한국 역사학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반영했지만 총체적인 연구의 첫 걸음이 되는 이유다. 서울대 역사연구소는 오는 30일 오후 5시30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목련홀에서 <역사용어사전> 출판기념회를 연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9년간 대장정…집필진만 300여명
2136쪽에 1500여개 용어 집대성
한국사·동양사·서양사마다
개념·용어 달라 세심한 조정
“비교사적으로 서술한 만큼
학제간 연구 위한 기초 이뤄” 사전의 표제어는 대·중·소로 나뉜다. 대항목은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에 공통으로 해당하는 용어인 △민족주의 △근대국가 △봉건제 △중화질서 등 45개 개념을 뽑아 200자 원고지 100여장 분량 안팎으로 서술했고 중항목은 각 20장 안팎, 소항목은 5장 안팎으로 써서 묶었다. 서양사에서 나온 근대적 개념들이 많았기 때문에 대항목은 서양사 쪽이 많았지만 각 영역에 따라 개념과 용어가 다른 것도 다수여서 세심한 조정이 필요했다. 편찬팀 전임연구원 최진묵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농민운동의 경우 동양사나 서양사는 ‘농민봉기’로 표현하지만 한국사는 ‘농민항쟁’이라고 한다. ‘아나키즘’은 동양사와 한국사에서 쓰지만 서로 결이 다르고, 동양사에서는 ‘무정부주의’로 쓴다”고 밝혔다. 결국 괄호 안에 해당 분야를 써서 표시하고 각각 뜻을 밝히는 식으로 사전을 구성했다. ‘농민봉기(서)’ ‘아나키즘(한)’이라고 적고 분야마다 뜻을 각각 설명해주는 식이다. “집필 원고를 가다듬을 때도 무비판적으로 쓰고 있는 일본식 표현이나 최근 나라 밖의 학계 연구에서 보이는 낯선 용어들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적절하게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학자들이 전공이나 개인 선호도에 따라 달리 이해하고 사용하던 용어들의 개념을 바로잡고, 학문적 통일성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최 교수는 일반 독자들의 역사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출판전문가들이 책 가격을 20만원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15만원대로 책값을 결정한 것도 대중화를 염두에 둔 것이다. “비교사적으로 사전을 서술한 만큼, 이제 학제간 연구를 촉진하는 기초적인 작업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번 작업에서는 사건, 지명, 인명, 사료용어 등을 포함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역사대사전>을 만들고자 할 때는 제대로 된 예산과 작업 기간이 필요하겠지요.” 이 사전이 한국 역사학의 축적된 연구 결과를 반영했지만 총체적인 연구의 첫 걸음이 되는 이유다. 서울대 역사연구소는 오는 30일 오후 5시30분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목련홀에서 <역사용어사전> 출판기념회를 연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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