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억의 장
정지영·이타가키 류타·이와사키 미노루 편저
삼인·3만원 1984년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는 역사 대신 기억을 내세운 ‘기억의 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면 ‘아, 그거!’ 하며 당연히 떠올릴 집합적 기억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해명하고, 그것을 통해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정립해보자는 취지였다. 제안에 의기투합한 120여명의 역사학자, 문인, 사상가들은 1992년까지 8년 동안 삼색기, 7월14일(프랑스혁명일), 에펠탑, 잔 다르크 등 누구나 생각할 기억을 탐구한다. 그 결과물로 총 7권 135편의 시리즈를 발간했다. 이후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사실이 어떠했는가’보다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됐는가’를 1차적 논의 대상으로 하면서 역사학자들이 쉽게 무시됐던 2차적 사료인 통설, 속설, 전승, 신화, 민화, 소문, 대중적인 역사소설 등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았다. <동아시아 기억의 장>은 한·중·일 공통의 관점에서 풀어본 ‘기억의 장’ 프로젝트다. 독도와 댜오위다오, 중일전쟁, 일본의 한반도 침략,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논쟁을 거듭해온 역사적 사실은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삼년고개 이야기, 프로레슬러 역도산 등 ‘사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한국과 일본 학자 14명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두 나라를 오가며 토론을 거듭했다. 한-중-일 사이에 역사교과서 논쟁이 뜨겁던 2000년,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온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 구성원들이다. 정지영은 모두 다 아는 심청 이야기가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 조선어 독본>에 실린 이후 최근까지 어떻게 활용됐는지 살핀다. 일본은 ‘공손하고 효도하는 신민’ 양성을 위해 교과서에 수록했고, 우리도 ‘지성으로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1948~55년),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심청’(1955~81년) 등으로 변주했음을 보여준다. 80년대 이후엔 심청이 성녀, 민족의 영웅, 창녀 등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되고, 일본 우익은 “부모가 딸을 팔았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기재로 악용해온 현실까지 파고든다. 이밖에 삼한정벌, 관우, 공자묘, 윤동주, 금강산, 지산암, 벚꽃, 빨갱이, 조센진, 운동회, 지문 등에 대한 한·중·일의 인식과 그것이 우리 기억에 어떻게 각인됐는지 세심하게 기록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정지영·이타가키 류타·이와사키 미노루 편저
삼인·3만원 1984년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는 역사 대신 기억을 내세운 ‘기억의 장’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실증적인 역사 연구가 아니라, 프랑스인이라면 ‘아, 그거!’ 하며 당연히 떠올릴 집합적 기억이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해명하고, 그것을 통해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정립해보자는 취지였다. 제안에 의기투합한 120여명의 역사학자, 문인, 사상가들은 1992년까지 8년 동안 삼색기, 7월14일(프랑스혁명일), 에펠탑, 잔 다르크 등 누구나 생각할 기억을 탐구한다. 그 결과물로 총 7권 135편의 시리즈를 발간했다. 이후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이 프로젝트가 펼쳐졌다. ‘사실이 어떠했는가’보다 ‘어떻게 인식되고 기억됐는가’를 1차적 논의 대상으로 하면서 역사학자들이 쉽게 무시됐던 2차적 사료인 통설, 속설, 전승, 신화, 민화, 소문, 대중적인 역사소설 등이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았다. <동아시아 기억의 장>은 한·중·일 공통의 관점에서 풀어본 ‘기억의 장’ 프로젝트다. 독도와 댜오위다오, 중일전쟁, 일본의 한반도 침략,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논쟁을 거듭해온 역사적 사실은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 공양미 삼백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한번 넘어지면 3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삼년고개 이야기, 프로레슬러 역도산 등 ‘사소한’ 주제를 진지하게 탐구한다. 한국과 일본 학자 14명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두 나라를 오가며 토론을 거듭했다. 한-중-일 사이에 역사교과서 논쟁이 뜨겁던 2000년, 민족주의 역사학을 비판하며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온 ‘비판과 연대를 위한 동아시아 역사 포럼’ 구성원들이다. 정지영은 모두 다 아는 심청 이야기가 192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행한 <보통학교 조선어 독본>에 실린 이후 최근까지 어떻게 활용됐는지 살핀다. 일본은 ‘공손하고 효도하는 신민’ 양성을 위해 교과서에 수록했고, 우리도 ‘지성으로 하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루어진다’(1948~55년),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심청’(1955~81년) 등으로 변주했음을 보여준다. 80년대 이후엔 심청이 성녀, 민족의 영웅, 창녀 등 다양한 시각에서 논의되고, 일본 우익은 “부모가 딸을 팔았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는 기재로 악용해온 현실까지 파고든다. 이밖에 삼한정벌, 관우, 공자묘, 윤동주, 금강산, 지산암, 벚꽃, 빨갱이, 조센진, 운동회, 지문 등에 대한 한·중·일의 인식과 그것이 우리 기억에 어떻게 각인됐는지 세심하게 기록한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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