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1만5000원 20세기 프랑스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가 “주거 기계”라고 명명했던 건축물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부동산 기계’로 전락한다. 60년대 이후 한국 도시 건축은 집장사, 부동산 투기의 난장으로 얼룩졌다. 그러니 도시와 건축의 관계가 대중의 관심사가 된 적이 거의 없다. 건축판에서 글꾼으로 소문난 유현준 홍대 건축대 교수의 도시건축에세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런 현실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초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도시와 건축이 왜 낮은 평가를 받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지를 쿨하게 이야기한다. 서울 도시공간에서 누구나 느끼지만 쉽게 종잡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건축적 맥락을 콕콕 집어낸다. 잠재적 건축주인 대중과 함께 걷고 싶은 거리를 어떻게 만들어낼까하는 화두가 책의 핵심이다. 코엑스, 가로수길, 명동·홍대 앞 거리 등 대중이 체험하는 서울 곳곳 명소들의 도시공간적 성격이 낱낱이 비교되면서 까발려진다. 강남 테헤란로와 코엑스 앞 광장은 왜 걷기 싫을까. 명동거리와 홍대 앞 거리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까닭은 뭘까. 유 교수는 ‘이벤트 밀도’란 개념을 꺼낸다. 단위 거리상 드나들 수 있는 시설 출입구의 숫자를 뜻하는 말이다. 지은이가 조사해보니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은 테헤란로 이벤트 밀도의 4.5배에 달했다. 상가 등의 출입구 숫자가 많아지면 훨씬 다양한 시각적 체험을 쌓을 수 있다. 거리에 사람의 활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하철역과 공원 등과 잇닿는 동선축을 이끌어내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한다. 신사역과 잇닿는 가로수길은 한강시민공원 입구인 토끼굴 위치를 몇십미터 이 길 쪽으로 살짝 튼 덕분에 거리 동선의 목적이 뚜렷해졌다. 여기에 상가도 같이 조성되면서 나들이길로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다. 역사가 켜켜이 눌러 앉은 옛 건축물의 소프트웨어를 재활용할 것도 제안한다. 숭례문의 경우 불탄 건물을 복원하는 물리적 과정보다 수백년전 디자인하고 당대 최고 구축방식으로 만든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오래된 나무여서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라는 이야기다. 바람직한 도시 건축은 지역별로 다양한 토양과 기후 등을 반영하는 포도주 같은 것이라며 자연하천의 흐름을 반영한 서울 북촌의 구불구불한 길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서울시의 도심 재생 계획이 논란 속에 추진중인 현 상황에서 책 속의 도시 재활용 해법들은 설득력있는 조언이라 할 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유현준 지음/을유문화사·1만5000원 20세기 프랑스 건축거장 르코르뷔지에가 “주거 기계”라고 명명했던 건축물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부동산 기계’로 전락한다. 60년대 이후 한국 도시 건축은 집장사, 부동산 투기의 난장으로 얼룩졌다. 그러니 도시와 건축의 관계가 대중의 관심사가 된 적이 거의 없다. 건축판에서 글꾼으로 소문난 유현준 홍대 건축대 교수의 도시건축에세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이런 현실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초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도시와 건축이 왜 낮은 평가를 받고 비아냥의 대상이 되는지를 쿨하게 이야기한다. 서울 도시공간에서 누구나 느끼지만 쉽게 종잡아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건축적 맥락을 콕콕 집어낸다. 잠재적 건축주인 대중과 함께 걷고 싶은 거리를 어떻게 만들어낼까하는 화두가 책의 핵심이다. 코엑스, 가로수길, 명동·홍대 앞 거리 등 대중이 체험하는 서울 곳곳 명소들의 도시공간적 성격이 낱낱이 비교되면서 까발려진다. 강남 테헤란로와 코엑스 앞 광장은 왜 걷기 싫을까. 명동거리와 홍대 앞 거리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까닭은 뭘까. 유 교수는 ‘이벤트 밀도’란 개념을 꺼낸다. 단위 거리상 드나들 수 있는 시설 출입구의 숫자를 뜻하는 말이다. 지은이가 조사해보니 명동 거리와 가로수길은 테헤란로 이벤트 밀도의 4.5배에 달했다. 상가 등의 출입구 숫자가 많아지면 훨씬 다양한 시각적 체험을 쌓을 수 있다. 거리에 사람의 활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지하철역과 공원 등과 잇닿는 동선축을 이끌어내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한다. 신사역과 잇닿는 가로수길은 한강시민공원 입구인 토끼굴 위치를 몇십미터 이 길 쪽으로 살짝 튼 덕분에 거리 동선의 목적이 뚜렷해졌다. 여기에 상가도 같이 조성되면서 나들이길로 각광받게 됐다는 것이다. 역사가 켜켜이 눌러 앉은 옛 건축물의 소프트웨어를 재활용할 것도 제안한다. 숭례문의 경우 불탄 건물을 복원하는 물리적 과정보다 수백년전 디자인하고 당대 최고 구축방식으로 만든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지은이는 강조한다. 오래된 나무여서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라는 이야기다. 바람직한 도시 건축은 지역별로 다양한 토양과 기후 등을 반영하는 포도주 같은 것이라며 자연하천의 흐름을 반영한 서울 북촌의 구불구불한 길을 사례로 들기도 한다. 서울시의 도심 재생 계획이 논란 속에 추진중인 현 상황에서 책 속의 도시 재활용 해법들은 설득력있는 조언이라 할 만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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