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독서
구의 증명
최진영 지음/은행나무·8000원 <구의 증명>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2010년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신작이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내는 중편소설 시리즈 ‘은행나무 노벨라’의 일곱번째 작품. 얼핏 수학 용어가 아닌가 싶은 제목에서 ‘구’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와 여주인공 ‘담’은 초등학생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연인 관계로 지내는 사이. 소설은 구가 먼저 죽은 뒤 남은 담이 구의 주검 일부를 음식처럼 먹는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인다. 담의 그런 행동은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라고 했던 생전 구의 다짐에 대한 응답이자, 그를 제 안에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사랑하는 두사람 사이에 ‘나’와 ‘너’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구와 담의 사랑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경우를 떠오르게 한다.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사건의 논리적 전개라기보다는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하는 둘의 사랑의 강도와 열기라 할 수 있다. 부모가 남긴 사채 상환 독촉에 시달린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은 구의 몸을 먹으면서 담은 자문한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스스로는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식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최진영 지음/은행나무·8000원 <구의 증명>은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2010년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최진영의 신작이다. 출판사 은행나무가 내는 중편소설 시리즈 ‘은행나무 노벨라’의 일곱번째 작품. 얼핏 수학 용어가 아닌가 싶은 제목에서 ‘구’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와 여주인공 ‘담’은 초등학생 때부터 10년이 넘도록 연인 관계로 지내는 사이. 소설은 구가 먼저 죽은 뒤 남은 담이 구의 주검 일부를 음식처럼 먹는 파격적인 설정을 선보인다. 담의 그런 행동은 “만약 네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라고 했던 생전 구의 다짐에 대한 응답이자, 그를 제 안에 영원히 간직하겠다는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사랑하는 두사람 사이에 ‘나’와 ‘너’의 구분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구와 담의 사랑은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경우를 떠오르게 한다. 소설을 지배하는 것은 사건의 논리적 전개라기보다는 불합리해 보이기까지 하는 둘의 사랑의 강도와 열기라 할 수 있다. 부모가 남긴 사채 상환 독촉에 시달린 끝에 비참한 죽음을 맞은 구의 몸을 먹으면서 담은 자문한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스스로는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자기 식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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