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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좋아하는 박민규와 심윤경이 받았던 상이라 더 기뻐요”

등록 2015-05-21 19:09

장편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한은형. “이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영리하지 못하고 상처 입기 쉬운 사람입니다. 영리하지 못해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다 안다면 왜 소설을 쓰겠어요?”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장편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한은형. “이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영리하지 못하고 상처 입기 쉬운 사람입니다. 영리하지 못해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다 안다면 왜 소설을 쓰겠어요?”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2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자 한은형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심윤경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 같은 작품은 정말 그 작가들만 쓸 수 있는 소설 같아요. 제게 소설 읽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준 작품들이죠. 이런 소설들을 산출한 한겨레문학상의 20회 수상자가 되어 정말 기쁩니다.”

장편 <거짓말>로 제20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한은형(36)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20일 오후 신문사에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로서 누릴 두가지 행복이 한꺼번에 그를 찾아왔다. 19일 저녁 한겨레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데 이어 21일엔 첫 소설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문학동네)가 출간되었다. 2012년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3년 만이다. ‘책 한권 없는 소설가’ ‘장편 한편 쓰지 않은 소설가’라는 두가지 민망한(?) 상황에서 일거에 벗어나 “드디어 진짜 소설가가 된 느낌”은 달콤했다.

“제가 응모한 <거짓말>이 한겨레문학상의 기존 수상작들과는 조금 차이가 있어서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어요. 뭐랄까, 따뜻한 휴머니즘과 인류애 같은 게 ‘한겨레문학상적’ 특징이라 하겠는데 제 소설에는 그런 게 없거든요. 이야기가 강한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제가 구독하는 신문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이라서 용기를 내게 됐습니다.”

<거짓말>은 1996년 고교 1학년 여학생 하석을 주인공 삼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경멸하는 이 당돌한 소녀가 학교로 대표되는 기성 질서와 충돌하는가 하면 일찍 자살한 스무살 위 언니의 비밀을 알아 가는 두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삼는다.

고1 소녀 성장담 ‘거짓말’로 영예
첫 소설집도 함께 나와 기쁨 두배
“언어감각, 생기 살아있는 소설 쓰고파”

“‘솔직’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였다. 민주, 평화, 평등, 자유, 수호 같은 말들과 함께. ‘훌륭한’이라는 형용사를 쓰는 사람과 ‘오롯이’ 따위의 부사를 쓰는 사람도 싫었다.”

같은 학교 남학생과 함께 발가벗고 교실 커튼을 덮어쓴 채 잠을 자다 들킨 뒤 “솔직하게” 반성문을 쓰라는 교감의 말에 하석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이 사건 때문에 이른바 ‘명문’ 고교에서 퇴학당한 하석은 기숙사가 있는 새 학교로 전학을 가 그곳에서 또 다른 사건을 벌인다. 주관이 뚜렷하고 도전적이며 냉소적이기까지 한 그는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 거짓을 말하는 편이 낫다”고 믿으며 바깥세계와 거리를 두려 한다.

주인공의 이런 면모는 ‘한겨레문학상에서 연상되는 틀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오히려 심사 과정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자의식 과잉을 지적하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생각은 달랐다.

“주인공은 사실 영리하고 야무지지 못해서 거꾸로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쓸데없이 자기 감정을 노출하는 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에요? 주인공이 바로 저 자신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이게 제 얘기라고 해도 거짓말일 것이고 아니라고 해도 거짓말일 거예요. 소설 속 이런저런 에피소드나 순간의 감정에는 제 것도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그렇지 않거든요. 저는 제 얘기를 날것 그대로 쓸 만큼 용기 있지는 않아요.”

한은형씨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재주도 있는 편이어서 언젠가는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리포트로 써낸 한편 말고는 소설을 쓰지 않던 그는 서른살 넘어 등단을 준비하면서야 비로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은 글재주나 테크닉의 영역이 아니고 인생에 대한 태도가 생겨야 하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평범했기 때문에 시간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던 거죠.”

인하대 국문학과와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괜찮은 직장의 회사원과 연구원으로 5년 정도 근무하던 그는 2011년에 처음 쓴 단편 여섯을 서로 다른 신문사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그중 다섯편이 최종심에 올랐지만 당선에는 못 미쳤다. 2012년 문학동네 신인상에도 서로 다른 두개 필명으로 두편씩 네편을 냈고 ‘한은형 A와 B’가 다른 한사람과 경합을 펼친 끝에 마침내 당선했다. “갈고닦는 쪽이 아니라 막 쓰는 스타일”이라는 그는 이번 수상작 역시 하루에 세시간씩 한달 동안 작업해서 원고지 950장짜리 초고를 완성했고 열흘 동안 퇴고를 거쳐 1040장 분량으로 마무리했다고 했다.

“이야기보다는 문장이 좋은 소설을 좋아합니다. 제가 쓴 글에 대해 누군가 ‘언어감각이 남다르다’고 평하면 기분이 좋아요. 메시지나 사회적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건 제 스타일이 아니에요. 쓰면서 저부터가 즐거울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습니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브론스키가 안나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생기’에 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소설의 핵심도 바로 그 생기인 것 같아요. 작가가 쓰지 않은 것을 느껴지게 하는 게 생기가 아닐까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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