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시의 물명고
고형진 지음/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6만8000원 “명태창난젖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무이를 뷔벼익힌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꿀어진다” 백석(1912~1996)의 ‘함주시초’ 연작 중 ‘북관’ 제1연이다. 백석 시 특유의 음식 소재에 북방 정서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역시 백석 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북방 토속어의 활용은 현대 독자의 시 이해를 까다롭게 한다. 백석 시의 어휘는 매력이자 장애이기도 한 것이다. 백석 시의 어휘를 의미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출처와 해석을 덧붙인 사전이 나왔다. <정본 백석 시집>을 엮고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같은 저서를 낸 백석 전문가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10년 작업 끝에 펴낸 <백석 시의 물명고>가 그 책이다. ‘물명고’(物名攷)란 조선 시대 대표적 분류어휘집인 유희의 <물명고>에서 따온 이름이다. <백석 시의 물명고>에 따르면 앞서 인용한 ‘북관’ 1연 중 ‘고추무거리’는 “고추를 빻아 체에 쳐서 가루를 내고 남은 찌꺼기”를 뜻하며, ‘끼밀다’는 “‘깨물다’의 평북 방언인 ‘깨밀다’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각각 북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과 남쪽 출판물인<평북방언사전>을 참조한 해석이다(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백석을 만나다>에서 ‘고추무거리’를 “고춧가루에 양념을 섞어 무친 것”이라 풀이했고,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백석 시 전집>에서 ‘끼밀다’를 “어떤 물건을 끼고 앉아 얼굴 가까이 들이밀고 자세히 보며 느끼다”라 보았다. 이렇듯 연구자들 사이 서로 다른 시어 해석 비교를 위해서는 이경수 중앙대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작업해 낸 <다시 읽는 백석 시>가 유용하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적잖은 시를 발표했지만 <백석 시의 물명고>는 지은이가 “(백석의) 진정한 문학적 생애”로 간주한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한 시 98편을 대상으로 삼았다. 고형진 교수에 따르면 이 98편 시에 나오는 어휘는 조사를 빼고 모두 3366개에 이른다. 책의 1부에서는 이 어휘들을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용언과 수식언(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기타(감탄사, 접속부사, 지시대명사, 지시관형사) 세 갈래로 나누고 가령 체언의 경우에는 다시 사람, 기본생활, 생활환경, 자연환경, 산업생활, 문화생활, 사물, 감각, 식물, 동물 식으로 소분류해서 풀이와 용례를 실었고, 2부에서는 자모순 표제어와 축약 뜻풀이를 실어 ‘찾아보기’로 구실을 하도록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평단과 학계에 시 읽기를 건너뛰고 해석부터 시도하는 경향이 퍼져 있다. 시를 해석하려면 우선 텍스트의 문장을 정확히 읽어야 하고, 많은 경우 시구와 문장의 정확한 독해가 그대로 시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머리말’에 나오는 이 대목은 기본을 무시하는 학계와 평단 풍토를 비판하면서 <…물명고>와 같은 기초 작업의 필요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고형진 지음/고려대학교출판문화원·6만8000원 “명태창난젖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무이를 뷔벼익힌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꿀어진다” 백석(1912~1996)의 ‘함주시초’ 연작 중 ‘북관’ 제1연이다. 백석 시 특유의 음식 소재에 북방 정서가 잘 버무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역시 백석 시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북방 토속어의 활용은 현대 독자의 시 이해를 까다롭게 한다. 백석 시의 어휘는 매력이자 장애이기도 한 것이다. 백석 시의 어휘를 의미 범주에 따라 분류하고 출처와 해석을 덧붙인 사전이 나왔다. <정본 백석 시집>을 엮고 <백석 시 바로 읽기>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같은 저서를 낸 백석 전문가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10년 작업 끝에 펴낸 <백석 시의 물명고>가 그 책이다. ‘물명고’(物名攷)란 조선 시대 대표적 분류어휘집인 유희의 <물명고>에서 따온 이름이다. <백석 시의 물명고>에 따르면 앞서 인용한 ‘북관’ 1연 중 ‘고추무거리’는 “고추를 빻아 체에 쳐서 가루를 내고 남은 찌꺼기”를 뜻하며, ‘끼밀다’는 “‘깨물다’의 평북 방언인 ‘깨밀다’의 변형으로 추정된다.” 각각 북에서 나온 <조선말대사전>과 남쪽 출판물인<평북방언사전>을 참조한 해석이다(물론 다른 견해도 있다.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는 <백석을 만나다>에서 ‘고추무거리’를 “고춧가루에 양념을 섞어 무친 것”이라 풀이했고, 이동순 영남대 교수는 <백석 시 전집>에서 ‘끼밀다’를 “어떤 물건을 끼고 앉아 얼굴 가까이 들이밀고 자세히 보며 느끼다”라 보았다. 이렇듯 연구자들 사이 서로 다른 시어 해석 비교를 위해서는 이경수 중앙대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작업해 낸 <다시 읽는 백석 시>가 유용하다). 백석은 분단 이후 북쪽에서도 적잖은 시를 발표했지만 <백석 시의 물명고>는 지은이가 “(백석의) 진정한 문학적 생애”로 간주한 1935년부터 1948년까지 발표한 시 98편을 대상으로 삼았다. 고형진 교수에 따르면 이 98편 시에 나오는 어휘는 조사를 빼고 모두 3366개에 이른다. 책의 1부에서는 이 어휘들을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용언과 수식언(동사, 형용사, 부사, 관형사), 기타(감탄사, 접속부사, 지시대명사, 지시관형사) 세 갈래로 나누고 가령 체언의 경우에는 다시 사람, 기본생활, 생활환경, 자연환경, 산업생활, 문화생활, 사물, 감각, 식물, 동물 식으로 소분류해서 풀이와 용례를 실었고, 2부에서는 자모순 표제어와 축약 뜻풀이를 실어 ‘찾아보기’로 구실을 하도록 했다. “언제부턴가 우리 평단과 학계에 시 읽기를 건너뛰고 해석부터 시도하는 경향이 퍼져 있다. 시를 해석하려면 우선 텍스트의 문장을 정확히 읽어야 하고, 많은 경우 시구와 문장의 정확한 독해가 그대로 시의 해석으로 이어진다.” ‘머리말’에 나오는 이 대목은 기본을 무시하는 학계와 평단 풍토를 비판하면서 <…물명고>와 같은 기초 작업의 필요성과 가치를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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