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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병사들이 겪은 한국전쟁의 불편한 진실

등록 2015-06-04 20:12수정 2015-06-05 10:02

유엔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군을 등장시킨 소설 <맘브루>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 역사 이야기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유엔 참전국 참전협회 대표 등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유엔 깃발 아래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군을 등장시킨 소설 <맘브루>는 이방인의 눈에 비친 우리 역사 이야기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유엔 참전국 참전협회 대표 등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참전 군인 육성 증언 형식
콜롬비아 작가의 소설
공식 역사가 가린 진실 들춰내
맘브루
라파엘 움베르토 모레노 두란 지음
송병선 옮김/문학동네·1만5000원

콜롬비아 작가 모레노 두란(1946~2005)의 소설 <맘브루>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콜롬비아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전쟁에서 죽은 장교의 아들인 역사학자가 아버지의 동료 군인들을 만나 증언을 듣는 형식이다.

소설이 시작되면 역사학자 비나스코는 비르힐리오 바르코 대통령이 탄 전용기에 동승해 서울로 향한다. 태평양 상공 1만 미터 가까이를 나는 비나스코의 눈에 36년 전 콜롬비아 병력을 태우고 부에나벤투라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했던 에이킨 빅토리호의 환영이 보인다. 소설은 참전 군인들의 증언과 비나스코 자신의 서술이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현재의 공간적 이동과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목적을 지닌다. 좁게는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죽었는지를 모르는 아버지의 사인을 확인하고자 함이고, 넓게는 콜롬비아군의 한국전 참전을 둘러싼 진실을 밝히고자 함이다. 물론 둘 다 공식 역사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을 가리거나 왜곡한다는 것이 비나스코의 생각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각자 전쟁에서 겪은 일에 관해 감격에 젖어 말했고,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모순되리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장교들의 회고록이나 참전용사들이 쓴 몇 권의 책, 그리고 전쟁에 관한 백과사전 항목들이 말하는 것과도 전혀 일치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증언들이 공식적 사실과 공개적으로 상충된다 하더라도 나는 내게 자신들의 경험을 말해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존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진술을 통해 드러나는 진실은 참전 동기에서부터 공식 역사와는 차이를 보인다. 증언자 한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가 범죄인데 머나먼 아시아 국가로 가 자유를 위해 죽으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파병 당시 제 나라 국민의 자유를 금기시하던 독재자 대통령은 “미국의 압력과 매카시 상원의원의 히스테리”에 굴복해 4천명 넘는 병력을 한국전쟁에 몰아넣었다.

전쟁터에서는 콜롬비아군이 용맹하게 적군 방어선을 뚫어 놓으면 탱크를 앞세운 미군이 뒤에서 치고 나와 전공(戰功)을 가로챈다. 고지를 점령한 콜롬비아군 두 중대가 교대를 준비하던 중 중국군이 기습 공격을 가하자 “혼란의 와중에 아군끼리 서로 총질을” 해대는 일도 벌어진다. 갖은 희생을 무릅쓰고 간신히 고지를 점령하자마자 기지로 후퇴하라는 명령이 내려오기도 한다.

이런 전투 상황의 혼란보다 소설에서 더 강조되는 것은 젊은 병사들의 들끓는 성욕과 그를 해소하기 위한 몸부림들이다.

“남자라는 것, 군인이라는 것, 발정기에 있다는 것은 참기 힘든 동의어의 반복이었고, 그래서 우리 대대는 절망에 사로잡힌 호색한의 무리처럼 보였다.”

병사들은 콜롬비아에서 제작한 ‘빨간 영화’와 일본에서 발행한 포르노 엽서와 잡지를 사고, 휴가를 얻으면 요코하마 사창가로 달려간다. 성병에도 자주 걸렸다. “우리 대대에서는 총탄보다 페니실린이 더 많이 사용됐고 창녀들이 중공군들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남자들뿐인 환경에서 동성애가 만연한다. 군종 신부까지 연루된 부대 내 동성애와 그로 인한 질투가 비나스코 중위의 의문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음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밝혀진다. “전쟁터에서의 혁혁한 용기를 치하하기 위해 미군들이 외국 군인에게 수여했던 몇 안 되는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영웅”과 동성간 치정 문제로 아군에게 살해당한 장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이렇듯 비나스코 중위를 둘러싼 ‘전설’이 해체되는 과정은 콜롬비아군의 한국전 참전에 관한 공식 역사가 허물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들 비나스코의 스승으로 등장하는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콜롬비아군의 한국전 참전 기사를 썼던 기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주한미군 위문 공연을 왔던 배우 메릴린 먼로가 나오는가 하면 콜롬비아 대통령 방한 직전 경찰 최루탄에 스러진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와 작가 이문열의 이름도 등장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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