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길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나애리·조성애 옮김. 중심 펴냄. 1만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 지음. 나애리·조성애 옮김. 중심 펴냄. 1만원
잠깐독서
지금 여성운동이 걷는 길의 행선지는 어디인가? 그 길에서 남성과 여성은 따로 떨어져 걸어야 하는가, 아니면 함께 걸을 수 있을까?
<남과 여> <엑스와이(XY), 남성의 본질에 대하여> 등 저서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프랑스 철학자이자 여성학자 엘리자베트 바댕테르(61)의 <잘못된 길>(중심 펴냄)은 이런 주제와 관련해 여성운동계에 논쟁을 일으킬만한 책이다. 1990년대 이후의 여성운동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 책은, 2003년 파리에서 처음 출간된 뒤 세계 여성운동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저작으로 평가받았다고 옮긴이들은 소개한다.
바댕테르가 겨냥한 비판의 화살은 90년대 이후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는 여성운동의 흐름에 맞춰져 있다. 무엇보다, 그는 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이 ‘여성=피해자’ ‘남성=가해자’라는 대립구도에 얽매여 남성의 폭력적 본성을 개조하고 남성지배를 고발하는 데 주력해왔다고 바라본다. 그런데 그것은 지나치게 급진화할 때에 ‘잘못된 길’이 돼버렸다. 바댕테르가 보기에, 그것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잣대로 삼아 남성과 여성을 도무지 화합할 수 없는 존재로 보아 분리주의 여성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여성은 스스로 “희생자로 자처하기”에 집착하고 “남성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성만의 ‘모성 신화’도 다시 싹을 틔우고 있다.
‘남성과 여성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회문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일관된 논지를 펴온 지은이는 ‘너무도 빨리 차이점을 과대평가하게 하고 평등을 상대적 차원에서 보는’ 여성운동의 여러 흐름을 이제 비판적으로 돌아볼 것을 강하게 요청한다. “결코 화합할 수 없는 남성적 심리와 여성적 심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대리석에 고정시켜 놓은 것 같은 남성·여성 신분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219쪽)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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