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규 시집 <집으로 가는 길>
충북 영동의 시인 양문규(45)씨가 새 시집 <집으로 가는 길>(시와 에세이)을 묶어 냈다. <벙어리 연가>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이다.
오랜 서울 살이를 청산하고 몇 해 전 고향 영동으로 내려간 시인은 집과 절을 오가며 꽃과 나무, 새와 곤충 따위와 더불어 한 시절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다. 그의 시집은 산과 강, 하늘과 땅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가운데 그 자신 자연 속의 한 존재로서 다른 자연물들과 어우러지며 빚어내는 풍경을 노래한다. 그 풍경은 “홀로 걸으며,/나 혼자만이 바라보는 풍경”(<천변 걷는다>)이지만, 외롭다기보다는 호젓하고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본디 뜻에 가까운 색채를 지닌 풍경이다.
양문규씨의 시집에 도시 생활에서 얻은 상처와 환멸의 흔적이 언뜻언뜻 비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도끼날에/어둑어둑/찢겨 날아간 생”(<장작 패는 남자>)과 같은 대목은 그의 낙향을 곧바로 낙오(落伍)로 이해하고픈 강렬한 유혹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의 더 많은 시들은 다른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사랑이니 희망이니/바닥을 드러냈던/부정한 날들이/둥둥 떠밀려 내려가고,”(<물봉선화>) “높고 낮은 곳 없이/두루 비추는 햇살 받으면서/양지쪽 바른 곳부터 꽃은 피어난다/나도양지꽃”(<나도양지꽃>) 같은 구절들이 그러하다.
시집을 통독하면서 짐작해 보건대 그의 이런 낙관의 근거는 고향의 자연과 사람들이 환기시키는 따뜻한 추억의 힘과 치유 능력인 것 같다. 그의 기억의 근저에는 “들밭머리 풀숲에서/집 가까이 양지쪽/두루 따뜻했던 세상”(<쇠똥구리>)이 일종의 원형적 심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번 그런 세상을 경험하고 목격했던 기억은 그런 세상이 다시 가능하리라는 희망과 기대를 불 지핀다. 표제작의 마지막 대목은 그런 희망과 기대를 숨김 없이 노출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많은 꿈들 울음으로 메마른/그 못난 사내,/앞길 열어 보여주기도 하면서/산채만 한 슬픔이며 아픔/살포시 감싸안아주기도 하는 것이다”(<집으로 가는 길>)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