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레디앙)
5·18때 아들 찾아다닌 최봉희 시인
위로와 연대 손짓 담은 시집 펴내
“당시 아픔 세월호 유가족과 같아”
위로와 연대 손짓 담은 시집 펴내
“당시 아픔 세월호 유가족과 같아”
“1980년 5월 18일 엄마는 젊었고/ 세 아이를 낳아 기를, 35년이 흘러/ 2014년 4월 16일 엄마의 아들은 아빠가 되었다// 엄마는 열일곱 너의 행방을 찾으러/ 광주 금남로 길을 헤맸다/ 10일간의 총소리,/ 군인들의 거리에는 전화가 끊기고/ 하늘은 최루가스로 어둠에 덮여/ 엄마는 자주 기침에 시달렸다//(…)// 4·16 아들 곁에/ 5·18 살아서 죽지 않은 엄마가 있다”(‘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 부분)
아픈 상징으로 자리잡은 숫자들이 있다. 1980년 5·18과 2014년 4·16이 그런 숫자들이다. 광주항쟁과 세월호 사이 35년 세월에 다리를 놓는 시집이 나왔다. <5·18 엄마가 4·16 아들에게>(레디앙)는 광주 5·18 때 열일곱 살 아들을 찾아 헤매다 계엄군의 곤봉에 머리를 다친 최봉희(77) 시인이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연대의 손짓이다.
“가만히 구조를 기다리던 아이가/ 큰 소리로 불렀을 엄마라는 말/ 기울어진 선체에 휩쓸리며/ 비명으로 불렀을 엄마라는 말/ 잠기며 솟구치며 짠 바닷물, 찬 바닷물 속에서/ 소리쳐 불렀을 엄마, 엄마라는 말/(…)/ 더는 부를 수 없어, 들을 수 없는 엄마라는 말”(‘엄마를 부르다’ 부분)
열일곱살 생때 같은 아들을 잃을까 두려워 거리를 헤맸던 엄마 시인은 세월호 희생 학생과 그 부모의 고통을 제 것처럼 느끼며 함께 울고 다짐한다. “자주 안아줄 걸/ 긴 머리칼 자주 빗질해 줄 걸/ 자주 웃어 줄 걸”(‘세상의 엄마들에게’) 뒤늦게 아쉬워하고, “엄마 아빠 가슴속에 보석처럼 빛나는/ 강물이 되어 우리 함께 지줄대며 흘러서 가”(‘아이들이 보낸 편지’)자고 한다.
최봉희 시인은 서문에서 “5·18 나의 아픔이 4·16 유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서 “용기를 내어 기록 시집을 남기게 되었으니 그나마 위로가 되고, 지난 1년이 내게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았다”고 밝혔다.
출판사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책값을 여느 시집의 절반인 4160원으로 정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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