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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공지영이 딸에게 들려주는 ‘인생 조리법’

등록 2015-06-11 20:34

작가 공지영은 딸에게 “네 육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향기를 맡게 해주어라. 정신보다 육체를 위하는 게 효과가 빠르고 좋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림은 책에서 소개한 요리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그림 이장미
작가 공지영은 딸에게 “네 육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향기를 맡게 해주어라. 정신보다 육체를 위하는 게 효과가 빠르고 좋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림은 책에서 소개한 요리들. 정용일 <한겨레21> 기자 yongil@hani.co.kr, 그림 이장미
27개 초간단 레시피에
삶에 관한 조언 곁들여
좋은 음식으로 몸부터 챙겨라
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한겨레출판·1만3500원

‘셰프 전성시대’라 할 만큼 음식에 관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작가 공지영(사진)이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졌다. 그의 새 책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장성해서 독립한 딸 ‘위녕’에게 그가 알려주는 27개 조리법(레시피)을 담았다. “사람이 진정 자립을 한다는 것, 사람이 진정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간단하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된다는 믿음에서다.

시금치샐러드, 어묵두부탕, 알리오 에 올리오, 김치비빔국수, 싱싱김밥 등 그가 소개하는 조리법의 공통점은 만드는 시간이 짧게는 5분에서 길어야 15분을 넘지 않는다는 것. “삶에서 길고 복잡한 것이면 다 싫어하는” 그는 “요리도 마찬가지여서” 번거롭지 않으면서도 실속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

“육체를 보살펴야 한다. 네 육체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좋은 것을 입히고 좋은 말을 들려주고 좋은 향기를 맡게 해주어라. 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내 몸에서부터 해 주어야 해. 정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정신과 육체가 둘이 아니고, 그리고 정신보다 육체를 위하는 게 효과가 빠르고 좋으니까.”

2008년에 낸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가 막 20대에 접어든 위녕에게 건네는 응원의 박수였다면, 이 책은 어느덧 20대 후반에 이르러 취업과 연애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놓고 고민하는 딸에게 건네는 위로와 조언을 담았다. 그러니까 책 제목 ‘레시피’는 몸에 좋은 음식 만드는 법이라는 표면적인 뜻과 함께 삶에 관한 조언과 응원이라는 이차적인 뜻을 아울러 지니게 된다.

앞서 밝힌 대로 이 책에 소개된 ‘공지영표 레시피’의 가장 큰 특징은 힘들이지 않고 짧은 시간에 마칠 수 있다는 것이다. 시금치샐러드와 굴무침 조리법을 보자.

“약간 커다란 접시에 담은 시금치를 한입에 먹기 좋을 만큼 손으로 뜯어서 예쁘게 편다. 올리브유를 그 위에 살살 뿌린다. 그리고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성질대로’ 뿌린다. 끝!”

“굴 한 봉지를 씻어 물기를 잘 빼고 여기에 간장 반 숟가락, 마늘 다진 것 티스푼 하나, 잘게 다진 파 한 티스푼, 참기름 한 숟가락, 깨 한 티스푼 넣어 무쳐. 끝!”

굴무침의 경우 ‘여기에 레몬을 반 개 짜서 뿌려도 좋아’라는 조언이 곁들여지지만 그 조언을 따르더라도 ‘초간단 레시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맛이 떨어지거나 영양이 부실한 것도 아니어서, 책에 안내된 조리법대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어 보는 독자도 적지 않을 듯하다. 실제로 여기 실린 글들이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될 때 작가의 조리법대로 음식을 했노라는 독자의 편지를 받기도 했다. 한번도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남성이 아내의 생일에 작가가 알려준 방법으로 새우 요리와 국수를 만들고 후식으로 꿀바나나를 해 주었는데 시간도 적게 걸리고 맛도 일품이었다는 것.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불렸으면 작가가 들려주는 ‘인생 레시피’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그가 육체 곧 몸과 더불어 강조하는 것이 ‘순간’의 중요성이다.

“위녕, 산다는 것도 그래. 걷는 것과 같아. 그냥 걸으면 돼.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돼. 그 순간을 가장 충실하게, 그 순간을 가장 의미 있게, 그 순간을 가장 어여쁘고 가장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만들면 돼.”

순간에 충실하라는 조언은 그가 선호하는 초간단 레시피를 닮았다. 재료의 맛을 잘 살린 음식이 몸에도 좋듯, 충실한 순간들이 모여 보람있는 생애를 이룬다. 여행중 멀미 예방과 숙취 해소, 변비 예방에 두루 좋은 다시마를 예찬하고, 일하는 여성을 위해 양질의 인스턴트 음식을 예찬하기도 한 그는 마지막 레시피로 ‘비움의 음식’ 된장차를 소개한다. “좋은 된장을 엷게 풀어 차처럼 그냥 마시는” 이 음식에는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통찰이 담겼다.

“언제나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힘들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힘들고, 잘 사는 것만큼 잘 죽기가 힘든 것이다. 그러나 비워야 잘 내려오고, 잘 죽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우리의 누추한 삶은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단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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