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오른쪽)와 중국 문학평론가 리징쪄가 1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제호텔 회의실에서 제3회 동아시아문학포럼과 한반도 및 동아시아 상황 등에 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동아시아문학포럼 최원식-리징쪄 대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가한 한국과 중국, 일본 작가 33명이 13일과 14일 이틀간의 발표와 토론을 마쳤다. 한국 작가단 대표인 문학평론가 최원식(66) 인하대 명예교수와 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인 평론가 리징쪄(51)가 14일 오후 대담을 나누었다. 최 교수는 <창작과비평> 주간을 지냈고 지금은 세교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리징쪄는 <인민문학> 편집장을 지냈으며 루쉰문학상 문학이론·평론상, 중국미디어문학대상 올해의 평론가상 등을 받았다.
최원식
“한국 광복 70돌, 일 패전 70돌…
일 정부, 되레 주변국 불안케 해
한국이 삼국 협력의 다리 돼야” 리징쪄
“화해 위한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아베 정부 도발 등 도전 있을수록
민간 차원에서 솔직하게 논의해야” 최원식(이하 최)= 올해 광복 70주년이 한반도 분단의 평화적 극복을 위한 중대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했는데 최근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보면 비관적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한 대신 주변 4강국의 영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에서 ‘한반도 문제의 외재화’라는 말도 쓰이는데, 그것은 동아시아 문제의 외재화와 동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리징쪄(이하 리)= 2015년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중국이 근대 이후 처음 승리를 거둔 것이 바로 1945년이었다. 중국 인민은 그 전쟁을 통해 각성하고 더 강하고 현대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최= 한편 일본으로서는 올해가 패전 70주년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일본 정부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강화 같은 움직임으로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시민과 지식인들이 지역 내 평화와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리=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역사를 문제삼는 것은 지나간 일에 매달리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미래를 위한 정치적, 도덕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아베는 하나의 정부일 뿐이다. 도전이 있을수록 민간 차원에서 역사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최=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아베 정부 비판 성명을 대규모로 내놓은 데 주목하고 싶다. 한·중·일 세 나라간 민간 교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열렸다는 사실도 의미가 크다. 리= 포럼이 열렸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다.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국면에서 세 나라 작가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발표와 토론을 벌이고 밤이면 어울려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같은 작가로서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은 단절시키는 게 아니라 연결시키는 힘을 지닌다. 국면이 복잡할수록 작가들은 교류해야 한다. 최= 이와 관련해 나는 제법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론’에 대해 말하고 글을 써 왔다. 동아시아의 많은 선각자들의 생각을 이어받고 발전시킨 것이다. 핵심은 한국과 일본, 중국 모두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의식보다는 서양만 바라보았던 데 대해 반성하자는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 이웃인 서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를 넘어서 호혜, 평등, 평화,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리= 그런 꿈을 꾸는 최 교수님이 존경스럽다. 중국 학자들 역시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반성하고 있다. 문학에서도 서양을 모델로 삼으면서 우리의 주체적 전통과 현실을 망각한 데 대해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 90년대 이후 중국 문학의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계몽의 종언’이니 ‘리얼리즘 인민문학으로부터의 일탈 징후’ 같은 소문을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문학이 발흥하면서 종이문학, 특히 진지한 문학의 위상이 추락한다는 말도 있었다. 실상은 어떤가? 리= 몇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중국 사회의 변화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할 수 있겠다. 90년대 초 도시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였던 데 비해 지금은 52%다. 이런 커다란 변화 속에서 문학의 역할도 바뀌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학의 계몽적 역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문학은 대체로 통속문학이고 소비성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순문학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본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속문학이 크겠지만 순문학의 문화적·정신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최= 한국은 70, 80년대 민주화 및 산업화 시기에는 오히려 탄압 속에서도 문학의 위엄을 지켰는데, 그 두가지가 얼추 달성된 90년대에 오히려 ‘위기’ 담론이 나왔다. 한국 문학은 과거에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 문학이 사회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책망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신경숙의 <외딴 방>처럼 새로운 형태의 사회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 한국 문학은 이행기에 있다고 보는데, 그런 점에서도 이번 포럼이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세계 문학 안에서 독자적 위상이 희박한 ‘동아시아문학’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서도 이번 포럼이 중요한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베이징/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국 광복 70돌, 일 패전 70돌…
일 정부, 되레 주변국 불안케 해
한국이 삼국 협력의 다리 돼야” 리징쪄
“화해 위한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아베 정부 도발 등 도전 있을수록
민간 차원에서 솔직하게 논의해야” 최원식(이하 최)= 올해 광복 70주년이 한반도 분단의 평화적 극복을 위한 중대한 초석이 되기를 기대했는데 최근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보면 비관적이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한 대신 주변 4강국의 영향력이 더 중요해졌다는 뜻에서 ‘한반도 문제의 외재화’라는 말도 쓰이는데, 그것은 동아시아 문제의 외재화와 동반 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리징쪄(이하 리)= 2015년은 항일전쟁에서 승리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에게도 의미가 크다. 중국이 근대 이후 처음 승리를 거둔 것이 바로 1945년이었다. 중국 인민은 그 전쟁을 통해 각성하고 더 강하고 현대적인 국가를 만들고자 노력할 수 있게 되었다. 최= 한편 일본으로서는 올해가 패전 70주년이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일본 정부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를 왜곡하고 평화헌법 개정과 자위대 강화 같은 움직임으로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 시민과 지식인들이 지역 내 평화와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리=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역사를 문제삼는 것은 지나간 일에 매달리자는 게 아니라 그것이 미래를 위한 정치적, 도덕적 기초이기 때문이다. 아베는 하나의 정부일 뿐이다. 도전이 있을수록 민간 차원에서 역사 문제를 솔직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최= 일본의 역사학자들이 아베 정부 비판 성명을 대규모로 내놓은 데 주목하고 싶다. 한·중·일 세 나라간 민간 교류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동아시아문학포럼이 열렸다는 사실도 의미가 크다. 리= 포럼이 열렸다는 것 자체가 큰 성과다. 정치·외교적으로 복잡한 국면에서 세 나라 작가들이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록 눈에 보이는 형태로 성과가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발표와 토론을 벌이고 밤이면 어울려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같은 작가로서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학은 단절시키는 게 아니라 연결시키는 힘을 지닌다. 국면이 복잡할수록 작가들은 교류해야 한다. 최= 이와 관련해 나는 제법 오래 전부터 ‘동아시아론’에 대해 말하고 글을 써 왔다. 동아시아의 많은 선각자들의 생각을 이어받고 발전시킨 것이다. 핵심은 한국과 일본, 중국 모두 아시아의 일원이라는 의식보다는 서양만 바라보았던 데 대해 반성하자는 것이다. 같은 동아시아 이웃인 서로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분쟁과 갈등으로 얼룩진 20세기를 넘어서 호혜, 평등, 평화,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리= 그런 꿈을 꾸는 최 교수님이 존경스럽다. 중국 학자들 역시 중국의 현대화 과정을 반성하고 있다. 문학에서도 서양을 모델로 삼으면서 우리의 주체적 전통과 현실을 망각한 데 대해 반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 90년대 이후 중국 문학의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계몽의 종언’이니 ‘리얼리즘 인민문학으로부터의 일탈 징후’ 같은 소문을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터넷문학이 발흥하면서 종이문학, 특히 진지한 문학의 위상이 추락한다는 말도 있었다. 실상은 어떤가? 리= 몇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지만, 중국 사회의 변화가 문학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은 할 수 있겠다. 90년대 초 도시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였던 데 비해 지금은 52%다. 이런 커다란 변화 속에서 문학의 역할도 바뀌고 있지만, 그렇다고 문학의 계몽적 역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터넷문학은 대체로 통속문학이고 소비성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순문학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본다.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통속문학이 크겠지만 순문학의 문화적·정신적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최= 한국은 70, 80년대 민주화 및 산업화 시기에는 오히려 탄압 속에서도 문학의 위엄을 지켰는데, 그 두가지가 얼추 달성된 90년대에 오히려 ‘위기’ 담론이 나왔다. 한국 문학은 과거에 너무나 많은 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근 문학이 사회성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책망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신경숙의 <외딴 방>처럼 새로운 형태의 사회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금 한국 문학은 이행기에 있다고 보는데, 그런 점에서도 이번 포럼이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세계 문학 안에서 독자적 위상이 희박한 ‘동아시아문학’의 형성과 발전을 위해서도 이번 포럼이 중요한 구실을 하리라고 기대한다. 베이징/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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