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보림 제공
파니 마르소 글, 조엘 졸리베 그림
이정주 옮김/보림·2만8000원 그림책은 예술작품인 동시에 장난감이다. 장난감이 부족했던 어린 시절 하드커버 그림책들을 펼쳐서 쭉 세워넣고 집을 만들어 놀던 기억을 가진 이들이 많다. 내용 못지않게 책의 크기, 질감, 모양 따위가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책의 외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파격적인 이미지의 그림책들을 많이 출간해온 보림의 신간 <세상의 낮과 밤>도 딱 그렇다. 책은 단 한장의 쪽으로 만들어져 있다. 모두 펼쳤을 때 4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길이의 아코디언북이다. “우리 함께 지구 여행을 떠나지 않을래? 대탐험을 떠나 보자…” 이렇게 시작되는 그림은 호랑이가 숨어 있는 인도의 맹그로브숲과 연어들이 뛰어오르는 미국 알래스카를 지나 모리타니 사하라 사막을 넘고 고래가 헤엄치는 아이슬란드 아쿠레이리 바다와 남극까지 전세계 열다섯 지역을 종횡무진한다. 나라에서 나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그림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 뒷장을 넘기면 다시 이어지는 그림은 바로 앞부분 지역의 밤 풍경이다. 코끼리가 풀을 뜯어먹던 세네갈 니오콜로코바 국립공원 뒷장에는 검은 어둠을 배경으로 사자가 영양을 쫓아가며, 물소를 타고 논을 갈던 중국 윈난성의 농부는 뒷장에서 농기구를 들고 집으로 향한다. 뒷장 맨 끝, 여행을 시작했던 마을의 밤이다. “자, 다시 출발점이야. 네 주머니 속에 여기까지 가져온 조약돌 하나, 별 하나가 들어 있을 거야.” 낮과 밤의 색감 차이는 오로지 음영의 밀도로만 표현된다. 이미지 전체를 검은색의 굵은 선과 면으로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들면 쫙 펼쳐서 동그랗게 세워놓고 그 안에 쏙 들어가 길게 이어진 그림을 찬찬히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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