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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종교적 자유와 생명의 존엄 사이에서 판사의 선택은?

등록 2015-07-30 19:39수정 2015-07-30 20:45

대중적 인기와 문학적 평가를 두루 확보한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신작 <칠드런 액트>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 사이 딜레마에 부닥친 판사를 등장시킨다. 사진 게티 이미지스/멀티비츠
대중적 인기와 문학적 평가를 두루 확보한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신작 <칠드런 액트>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생명의 존엄성 사이 딜레마에 부닥친 판사를 등장시킨다. 사진 게티 이미지스/멀티비츠
매큐언 소설 ‘칠드런 액트’
수혈 거부 소년 재판 다뤄
윤리적 딜레마와 감정 문제도
칠드런 액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한겨레출판·1만3500원

“난 이 연애를 할 거야. (…) 죽기 전에 한번은 대단하고 열정적인 연애를 하고 싶어.”

59살 고등법원 가사부 판사 피오나 메이에게 어느 일요일 저녁 고대사 교수인 남편 잭이 선언하듯 통고한다. 결혼한 지 35년. 아이는 없지만 서로 신뢰하고 사랑한다 믿었던 남편이었는데…. 피오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니라고, 남편은 말한다. 아내를 사랑은 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열락, 흥분으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경험”을 더 늦기 전에 해 보고 싶다는 것. 사랑과 연애를 편리하게 구분하려는 남편의 사고방식을 피오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녀에게는 관습적으로 옳은 것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있었다.” 피오나는 남편을 집에서 내보내고 열쇠를 바꾼다.

<속죄> <암스테르담> 등의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67)이 지난해 9월 발표한 소설 <칠드런 액트> 도입부에서 주인공 피오나를 괴롭히는 문제는 결혼의 위기인 것처럼 보인다. “버림받은 쉰아홉살 여자” 피오나에게 남편과 관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시간과 열정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은 판사로서 직분이다. 특히 종교적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며 죽음을 달게 맞겠다는 여호와의 증인 소년 가족을 상대로 한 병원의 긴급 소송을 맡게 되면서 그는 남편 문제를 잠시 잊을 정도로 일에 몰두한다. 영국 법은 18살 이상 어른이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는데, 여호와의 증인 소년 애덤 헨리는 18살을 석달 남겨둔 나이. 부모는 물론 애덤 역시 확고한 종교적 신념과 냉철한 현실 인식에 바탕해 수혈 치료를 거부하고, 피오나는 이례적으로 병원으로 애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누며 상황을 파악하고자 한다.

제목 ‘칠드런 액트’(children act)는 ‘아동법’을 가리킨다. 책 앞에는 “아동의 양육과 관련한 사안을 판결할 때 (…) 법정은 아동의 복지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영국 아동법 제1조 (a)항이 적혔는데, 피오나 메이 판사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아동 복지와 종교의 자유 사이 대립이다. 피오나가 어떤 사실과 논리에 근거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애덤과 그 가족은 물론 독자 역시 숨을 죽이고 기다리는 가운데 드디어 판결문이 낭독된다.

“1989년 아동법은 그 도입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동의 복지임을 주창했습니다. 저는 ‘복지’가 ‘안녕’과 ‘이익’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는 A(=애덤)의 의사를 고려할 의무도 있습니다. (…)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는 판결을 내리는 데 있어서 A의 나이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신앙과, 치료를 거부할 권리에 내포된 개인의 존엄성에 응분의 비중을 두었습니다.(…)”

피오나가 어느 쪽 손을 들어줬을지를 여기서 밝히는 것은 스포일러에 해당할 터. 책을 읽을 독자가 발견할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

이언 매큐언은 자신의 친구이자 전직 항소법원 판사로 역시 여호와의 증인 십대 소년 관련 재판을 한 바 있는 앨런 워드한테서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워드는 피오나의 판결문에도 그 이름이 나온다). 매큐언은 영국 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글 ‘법 대 종교적 신념’에서 판결문과 소설의 관계를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가사부의 판결문에는 무수한 개인의 드라마와 복잡한 도덕의 문제가 담겨 있다. 그것은 소설의 영역이다. 비록 운 좋은 소설가와 달리 판사는 실제 인간세계에 묶여 있고 반드시 판결을 내려야 하는 처지이지만.”

피오나의 정확하면서도 아름다운 판결문으로 소설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피오나가 판결 전에 병원으로 애덤을 찾아갔던 일은 두 사람에게 뜻밖의 파장을 미치고, 작가는 피오나(와 독자) 앞에 또 다른 윤리적 딜레마를 제시한다. 판사의 권한과 책임은 어디까지이며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하는 공적 영역의 고민 말고도 피오나는 남편 잭의 출분을 비롯해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문제들 역시 해결해야 한다. “노년의 유아기에서 막 기는 법을 배우고 있는 여자” 피오나는 과연 시험과 시련을 거쳐 두 발로 설 수 있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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