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1만6000원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고, 곳곳에 맑은 샘과 온천이 솟는 곳. 사람은 돌에 혼을 불어넣어 논의 신을 만들고, 그렇게 탄생한 신은 마을을 수호해주던 평화로운 곳. 물고기와 조개를 한아름 안겨주던 시라누이해를 마주한 일본의 작은 마을. 수은 중독이 원인인 미나마타병이 1956년 공식적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미나마타는 그런 곳이었다. ‘신일본질소’(짓소) 공장에서 함부로 내다버린 폐수에 섞인 메틸수은화합물은 신성한 바다를 유영하는 어패류 속에 축적됐고, 이 어패류를 먹은 미나마타 사람들은 뼈가 뒤틀리고 뇌가 쪼그라들다 마침내 숨지는 참혹한 병과 싸워야 했다. 이 책은 미나마타병을 다룬 지은이의 장편소설 <고해정토> 3부작 가운데 제2부다. 환자가족 29가구가 책임을 피하려는 짓소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자본을 편드는 정부와 싸우며, 짓소의 주주총회장에 들어가 아무 죄 없이 죽어간 가족의 고통을 전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은이는 합리와 산업문명으로 설명되는 ‘근대’가 생명력 가득한 자연과 공동체를 어떤 식으로, 얼마나 붕괴시켰는지를 고찰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실제 피해자들과의 끈끈한 소통에 바탕한 덕분에 소설은 르포르타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병을 팔아 회사로부터 돈이나 뜯어내려 한다’는 사람들의 몹쓸 수군거림,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운동단체 활동가들의 오만한 계몽주의를 꼬집은 시선도 묵직하다. 여우와 너구리, 길의 신령 등을 일상의 대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불러낼 정도로 원시 또는 ‘신화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삶의 터전을 파괴당한 뒤에도 신화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무한다. 소설의 마지막 단락인, 미나마타병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는 이렇다. “꽃이 필 때믄, 죽어가는 딸아이의 눈동자가 되어주셔서, 꽃잎을 주워주실 수 없을랑가요? 매년 한 장이면 되는디. (…) 빛나는 물결 바다에, 팔랑팔랑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전해주시지유.” 등장인물들이 ‘고통의 바다’(고해)인 시라누이해와 미나마타병을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원시의 세계이며, 그로 인해 고해는 곧 ‘번뇌 없는 곳’(정토)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된다. 지은이는 “지금껏 말한 적이 없는 여자의 말”을 추구한 페미니스트답게, “목숨의 싹이 그대로 변형되어가고 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속수무책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분노와 친절함”이 가득한 문장을 선사한다. 이를 두고 일본의 여성학자인 우에노 지즈코는 <여자들의 사상>에서 “이시무레가 쓴 문체가 미나마타병에 빙의한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시무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원통한 인생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녹색평론사·1만6000원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고, 곳곳에 맑은 샘과 온천이 솟는 곳. 사람은 돌에 혼을 불어넣어 논의 신을 만들고, 그렇게 탄생한 신은 마을을 수호해주던 평화로운 곳. 물고기와 조개를 한아름 안겨주던 시라누이해를 마주한 일본의 작은 마을. 수은 중독이 원인인 미나마타병이 1956년 공식적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미나마타는 그런 곳이었다. ‘신일본질소’(짓소) 공장에서 함부로 내다버린 폐수에 섞인 메틸수은화합물은 신성한 바다를 유영하는 어패류 속에 축적됐고, 이 어패류를 먹은 미나마타 사람들은 뼈가 뒤틀리고 뇌가 쪼그라들다 마침내 숨지는 참혹한 병과 싸워야 했다. 이 책은 미나마타병을 다룬 지은이의 장편소설 <고해정토> 3부작 가운데 제2부다. 환자가족 29가구가 책임을 피하려는 짓소를 상대로 소송을 내고, 자본을 편드는 정부와 싸우며, 짓소의 주주총회장에 들어가 아무 죄 없이 죽어간 가족의 고통을 전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은이는 합리와 산업문명으로 설명되는 ‘근대’가 생명력 가득한 자연과 공동체를 어떤 식으로, 얼마나 붕괴시켰는지를 고찰한다. 철저한 자료 조사와 실제 피해자들과의 끈끈한 소통에 바탕한 덕분에 소설은 르포르타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병을 팔아 회사로부터 돈이나 뜯어내려 한다’는 사람들의 몹쓸 수군거림,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운동단체 활동가들의 오만한 계몽주의를 꼬집은 시선도 묵직하다. 여우와 너구리, 길의 신령 등을 일상의 대화 속에서 일상적으로 불러낼 정도로 원시 또는 ‘신화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이들은, 삶의 터전을 파괴당한 뒤에도 신화의 방식으로 서로를 위무한다. 소설의 마지막 단락인, 미나마타병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의 간절한 호소는 이렇다. “꽃이 필 때믄, 죽어가는 딸아이의 눈동자가 되어주셔서, 꽃잎을 주워주실 수 없을랑가요? 매년 한 장이면 되는디. (…) 빛나는 물결 바다에, 팔랑팔랑 갈 수 있도록. 그렇게 전해주시지유.” 등장인물들이 ‘고통의 바다’(고해)인 시라누이해와 미나마타병을 매일같이 마주하면서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원시의 세계이며, 그로 인해 고해는 곧 ‘번뇌 없는 곳’(정토)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된다. 지은이는 “지금껏 말한 적이 없는 여자의 말”을 추구한 페미니스트답게, “목숨의 싹이 그대로 변형되어가고 있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속수무책인 것에 대한 본능적인 분노와 친절함”이 가득한 문장을 선사한다. 이를 두고 일본의 여성학자인 우에노 지즈코는 <여자들의 사상>에서 “이시무레가 쓴 문체가 미나마타병에 빙의한 것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이시무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원통한 인생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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