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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3세계, 지역 아닌 인간존엄성 프로젝트

등록 2015-09-17 20:45

갈색의 세계사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박소현 옮김
뿌리와 이파리·2만5000원

대다수 사람들에게 ‘제3세계’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저개발국, 분쟁, 독재 같은 부정적 이미지일 가능성이 높다. 반제독립투쟁, 평등과 자유, 비동맹운동 같은 연관어를 떠올릴 정도면 기본 지식은 갖춘 셈이다. 인도 출신의 역사학자가 쓴 <갈색의 세계사>는 ‘제3세계 인민의 역사’라는 부제가 책의 내용과 성격을 드러낸다.

지은이는 “1980년대에 ‘제3세계’는 실패한 국가, 기근, 빈곤, 절망의 동의어”였지만 “(그런) 탈식민 시기 담론들의 일반적인 시각이 편견에 찬 것”이라고 지적한다. ‘제3세계’는 특정 지역을 일컫는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인민의 희망을 담아낼 사상과, 그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들을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3세계 프로젝트의 역사는 순전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는 서사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진실”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상을 꿈꿨으나 끝내 “실패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세계를 3개로 처음 구분한 것은 1952년 프랑스 레지스탕스 출신 지식인 알프레드 소비였다. 제1세계는 ‘서방(미국과 서유럽)’으로, 시장자본주의를 신봉하며 194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했다. 제2세계는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지향하며 소련에 대체로 협력했다. 양대 진영에 분명하게 편입되지 않거나 편입을 거부한 나머지가 제3세계였다.

2차대전 종전과 식민지 제국주의 시대의 종언은 신생 독립국들이 스스로 미래를 만들 시간이었다. 그들은 상당한 천연자원과 1차 생산품을 갖고 있었지만 가망 없이 파괴된 경제도 떠안고 독립을 맞았다. 제3세계 국가들은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을 나라의 토대로 삼았다. 냉전 대립에 맞서 비동맹운동을 구체화했고, ‘평화공존’을 국제관계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식민지배가 남긴 한계는 너무나 뚜렷했다. “투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신생국들은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지도, 남겨진 식민지형 국가구조를 분쇄하지도 못했다. 구사회계급과 손잡고 식민지 관료제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제3세계 의제를 무너뜨렸다.” 여기에다, 부채 위기와 제1세계의 세계적 재편성 정책은 결정타였다. 다양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차지했던 공간은 인종주의, 종교적 근본주의, 국수주의 등으로 채워졌다.

제3세계의 의제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있던 시절에 세계는 나아져갔지만, 그런 움직임이 사라진 지금, 세계는 황폐해져가고 있다. 희망은 사라진 걸까? 신자유주의의 횡포와 한계는 세계 곳곳에서 격렬한 대중운동을 낳고 있다. “이러한 창조적인 운동들에서 진정한 미래의 의제가 떠오를 것이고, 그날이 오면 ‘제3세계’는 후계자를 찾게 될 것”이라는 게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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