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세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프로그램을 가장 충실하게 지닌 세력이 120년 전 전봉준과 농민군이었습니다. 우리의 근대화란 최소한의 서구적 합리성마저 빼앗긴 채 일본에 의해 일그러진 근대였지요. 최근 국정교과서 논란 등에서도 확인되는 고장 난 근대의 난국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봉준에게서 얻고 싶었습니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 세계를 기려 제정된 혼불문학상 제5회 상을 받은 작가 이광재(52)씨는 수상작인 소설 <나라 없는 나라>(다산책방)를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6일 낮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였다.
그는 사실 3년 전 <봉준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전봉준 평전을 낸 바 있다. 평전으로 한번 다루었던 인물을 소설로 다시 쓸 정도로 그에게 전봉준이 중요했다는 뜻이겠다.
“평전 작업을 위해 취재를 하면서 전봉준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았죠. 전봉준은 끊임없이 옮겨 다니는 삶을 살았는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근대적 합리성에 매우 가까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성격을 좀 더 자유롭게 그릴 수 있어서 좋더군요. 그럼에도 평전보다는 소설 쓰기가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소설 속에서, 일본군이 경복궁을 침입할 때 그에 맞서려던 조선 병사에게 고종이 총을 내려놓고 물러나라는 명령을 내리자 병사 하나가 말한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작가는 오지영의 책 <동학사>에서 접한 이 장면에서 소설 제목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광재씨는 1989년 <녹두꽃>에 단편을 발표하면서 등단했고 90년대 초에 소설집 한권과 장편 두권을 냈지만 그 뒤 20년 가까이 문학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
“작가로서 세계와 인간을 다루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생계 때문에 문학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문학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앞으로는 당대 이야기와 역사물을 두루 쓰고 싶습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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