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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과와 이과 차라리 전쟁을 벌여라

등록 2005-10-13 16:41수정 2006-02-06 17:23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br>
이인식 황상익 등 지음. 고즈윈 펴냄. 1만1000원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
이인식 황상익 등 지음. 고즈윈 펴냄. 1만1000원
학교 안팎에서 서로 먼산보듯 하더니
인문학도 위기고 이공계도 위기다
인문사회계는 게으르고
과학기술계는 사회적 고민이 없다
교류와 소통으로 유기적 지식인이 절실하다
우리사회에 ‘두 문화’의 벽은 얼마나 공고한가?

학교 울타리 안에서 이과와 문과는 뚜렷하게 구분되고, 학교 밖 사회에서 또 학문영역에서도 이과와 문과의 ‘정신’은 서로 먼산 바라보는 꼴이다. 위기마저도 ‘두 위기’다. 돈 되고 주목받는 실용학문을 좇고 기초학문이 소외되면서 일어나고 있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인문학의 위기’와 2000년대 이후 ‘이공계의 위기’는 별개의 문제로만 각자 영역 안에서 얘기되고 있잖은가?

출판사가 이름붙인 ‘과학논객’ 9명이 함께 지은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경계를 넘어라>(고즈윈 펴냄)는 인문사회과 과학기술 사이에 깊게 패인 골짜기에 교류와 소통의 다리를 놓자는 본격 제안이다. 무관심과 오해를 걷어내려면,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이 서로 비판논쟁을 벌이는 한국형 ‘과학전쟁’이라도 필요한 때라는 소망마저 이 책은 내비친다. 이필렬 방송통신대 교수(과학사), 이상욱 한양대 교수(과학철학),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 백욱인 서울산업대 교수(사회학), 박병상 풀꽃세상을위한모임 대표, 송성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최경희 이화여대 교수(과학교육)가 필자로 참여하고,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가 서문을 썼다.

일부 글들은 참신한 기획 의도에서 다소 벗어나 있거나 ‘경계를 넘어라’라는 명령어법에 걸맞는 치열한 분석과 성찰의 뒷심 부족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이 책이 도드라지는 것은 이 책이 문과와 이과의 경계 구분에 너무도 익숙한 우리사회에 필자들이 정색을 하고 던지는 ‘새로운 인문주의’ 출현의 예고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 무너진 현실 직시해야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흔히 말하듯 문과 계열의 교육을 받는 이들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필자들이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분야 모두에 새로운 인문주의를 주문하고 있으니, 이과의 교육과 사고방식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새로운 인문주의는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래서 ‘새로운 인문주의자’는 과학기술 시대에 과학기술의 이해와 인문사회의 성찰을 모두 갖춘 지식인들이다.

‘문과의 집’과 ‘이과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이들이여, 이과와 문과의 경계가 무너지는 집밖의 현실에도 눈을 돌리자, 필자들의 주장은 이쯤 되는 듯하다.

필자들은 우리사회 인문사회 분야의 지적 게으름을 비판하고 나섰다.

이필렬 교수는 완곡어법을 피해 “한국 인문학자들의 자연과학 이해 수준은 그들이 인간배아복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논의를 하지 못한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며 현실 과학에 대한 인문사회의 지적 빈곤을 공박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이해할 마음이 없는 인문학은 “한국사회를 지적인 빈곤상태로 방치하고, 일순간에 한쪽으로 쏠리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고 보는 그는 이런 분위기가 한국 과학자의 지적 성취에 환호하는 과학기술 민족주의를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기후변화 탓에 이젠 서울에서도 자라는 대나무를 보며 푸근함을 노래하는 시는 생태시가 아니라 자연과 시대의 아픔을 외면하는 반생태시임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예시는 눈길을 끈다. 시인의 생태적 감수성도 과학기술의 이해를 외면해선 안 된다!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 그 이후 생명공학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두 문화에 생명윤리를 중심으로 한 논쟁적 담론 교류의 계기를 본격적으로 마련했다. 사진은 복제양 돌리와, 1998년 출산한 새끼 양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복제양 돌리의 탄생과 그 이후 생명공학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두 문화에 생명윤리를 중심으로 한 논쟁적 담론 교류의 계기를 본격적으로 마련했다. 사진은 복제양 돌리와, 1998년 출산한 새끼 양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사회와 윤리에 대한 우리사회 과학기술자들의 무관심도 비판 대상이다.

‘과학기술 분야들의 내부 통합’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조화’에 대한 인식이 우리 과학기술자들에겐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송성수 부연구위원은 통합의 시대를 사는 과학기술자들에게 ‘유기적 지식인’을 주문한다. “과학기술자는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만을 지닌 ‘기능적’ 지식인이 아니라 다른 과학기술 분야는 물론 인문사회에 관한 지식을 동시에 겸비한 ‘유기적’ 지식으로서의 역할을 정립하는 데 힘써야 한다.”(225쪽)

이 책의 기획 의도에 따라 더러 도발적인 직설어법들도 언뜻언뜻 비친다. “과학기술에 무지한 인문주의자들” “인문사회의 지식이나 충분한 윤리적 고민이 없는 생명공학자들” 같은 표현은 여전히 ‘경계선을 넘으라’는 제안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한쪽에서 다른 쪽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일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인문주의’는 세상 지식의 존재양식이 바뀌고 있기 때문에 출현한다.

디지털 인터넷시대에 지식은 이제 생산자 따로 소비자 따로 나뉜 채 존재하지 않으며 ‘생각의 속도’는 빛과도 같이 빨라져 융합하고 증식하고 흩어지며 지식과 지식인의 새로운 형상을 만들고 있다(백욱인). 또한 물리학과 생물학이 결합하고 사이언스와 테크놀러지가 한몸을 이루듯이, 통합은 과학기술 발전의 새로운 주제로 자리잡았다(송성수). 특히 생명공학은 이제 인문사회의 가치·윤리를 외면할 수 없게 됐다(황상익·박병상). 환경영향평가 제도처럼, 과학기술이 미래 사회에 끼칠 잠재적 부작용에 대비하게 하는 ‘과학기술영향평가’도 점차 필수적 장치로 자리잡고 있다.

격렬한 논쟁이 상호이해 길 넘어

이 책에서 이런 흐름을 아우르는 열쇳말을 찾는다면, 그건 ‘통합’과 ‘소통’일 것이다. 통합과 소통의 시각에선, 윤리가 과학 발전의 발목을 잡는 존재가 아니라, 좀더 견실한 과학이 성장하게 하는 동반자로 이해된다. 인문사회학은 자기 내용과 역할을 더욱 풍성하게 할 기회를 얻고, 과학기술은 좀더 유연하고 세련된 지식으로 현실 사회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2장에 소개된대로, 1996년 미국 뉴욕대학의 물리학 교수 앨런 소칼이 촉발해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두 문화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이른바 ‘과학전쟁’이 결국 두 문화에 상호이해의 길을 넓혀주었음(이상욱)을 되돌아보는 일은 ‘경계를 넘으라’는 이 책에선 각별한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문과와 이과 중에 하나만 알고 있는 절름발이 국민이 매우 많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매우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이”(송성수)는 우리 풍토에선 두 문화의 조용한 무관심보다는 시끌벅적한 논쟁이 더욱 그립지 않겠는가.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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