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기우라 고헤이의 <… 잡지디자인 반세기>
사람/ <… 잡지디자인 반세기>의 저자 스기우라 고헤이
“나의 50여년 잡지 디자인 인생은 ‘의표를 찌르는 실험들’의 연속이었습니다. 표지 제목의 꼴과 위치를 뒤틀어 변형하고 기울고 뒤집기도 하고, 때로는 잡지 내용을 표지에 드러내듯이 표지에 문자를 빼곡이 배열해 ‘웅성거림’을 연출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기하학 도형의 단순반복적 증식을 즐겨 쓰기도 했습니다.”
지난 8, 9일 파주 출판도시에서 열린 ‘2005 동아시아 책의 교류’ 국제심포지엄과 자신의 작품 전시회에 때를 맞춰 파주를 찾은 저명한 일본인 책 디자이너 스기우라 고헤이(73)는 8일 강연에서 ‘변화와 움직임, 울림, 그리고 웅성거림’을 드러내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때맞춰 출간된 <스기우라 고헤이 잡지디자인 반세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의 저자이기도 하다.
“잡지는 흔히 좋지 않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잡다한 것들을 모은다는 뜻이 있죠. 그렇지만 ‘잡’(雜)이란 말은 결코 경시될 게 아닙니다. 불교에서 ‘잡색’은 오색의 어우러짐입니다. 오색이 만나 빛을 발하는 만다라를 이루듯이, 잡지에서 잡다한 것이 제대로 만나면 찬란한 빛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잡스러운 것에서 빛나는 것이 태어나게 하는 것”은 편집기획자와 책 디자이너의 직업적 사명인 셈이다.
그가 반세기 동안 빚어낸 잡지들은 그때마다 출판계와 책시장에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머무르는 법이 없는 ‘변화와 움직임’은 그의 중요한 디자인 방향이었다. “제철 음식이 몸에 가장 좋듯이 잡지도 ‘한창 때’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표지는 늘 새로워야 하죠.” 그가 수십년 동안 디자인한 건축잡지 <에스디(SD)> <도시주택> <에피스테메> <계간 은화> <유(遊)> 등을 보면, 한결같이 거기엔 잡지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잡지 매호마다 다른 변화를 느끼게 한다.
때로는 유행을 정면으로 거슬러, ‘보는 잡지’에서 ‘읽는 잡지’로 되돌아간 그의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1965년 창간한 의 표지는 1966년 그의 손에서 문자 투성이로 다시 태어났다. “표지는 으레 사진·그림을 크게 쓰던 당시 흐름과는 반대로 나아갔던 이 디자인은 반대도 극심했지만 잡지 편집장이 반대를 막아주어 계속될 수 있었다”는 스기우라는 “사람 얼굴에 몸속의 건강상태가 드러나듯이 ‘표지는 얼굴’이라는 생각이 이런 디자인의 바탕”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때 “A5 용지 크기로 16쪽에 담길만한 분량의 글자와 그림을 매우 작고 조밀하게 표지에 배열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일을 냈다. 1968년 1월호에선 표지 제목뿐 아니라 안쪽 본문마저 위아래를 뒤집어가며 읽도록 텍스트를 역전시켜 배열하는 파격 실험을 벌여 논란을 일으켰던 그는 “이 일로 그 잡지 디자인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의표 찌르기’의 일화를 소개하며 웃었다.
이런 그의 실험은 다른 잡지 디자인에서도 이어졌다. 평면 표지에 3차원의 입체감을 구현한 <도시주택>, 제호를 실제 납으로 주조해 여러 상황에서 촬영해 표지로 썼던 도시건축잡지 , 봄·여름·가을·겨울호는 같은 분위기로 만들되 해가 바뀌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계간 은화> 등등…. 표지 제목을 곧잘 기운 채로 쓰곤 하는 스기우라는 “지구의 기울기인 23.5도를 표지 문자의 기울기로 써왔는데 이건 주변에서도 잘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라며 웃었다. 실제로 그의 표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기운 제목들은 대부분 23.5도로 기울어져 있다.
스기우라는 40여종 전문잡지를 포함해 2000권 가량의 책을 디자인하며, 일본 출판계에서는 책 디자인의 방향을 이끌어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래를 향한 다양한 지혜를 담는 책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작품들은 다음달 7일까지 파주출판도시 안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전시된다. 파주/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스기우라는 40여종 전문잡지를 포함해 2000권 가량의 책을 디자인하며, 일본 출판계에서는 책 디자인의 방향을 이끌어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미래를 향한 다양한 지혜를 담는 책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작품들은 다음달 7일까지 파주출판도시 안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전시된다. 파주/ 글·사진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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