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작가 한승원씨. 사진 문학동네 제공
원로작가 한승원씨 새 장편 ‘물에 잠긴 아버지’ 출간
원로 작가 한승원(76·사진)의 신작 <물에 잠긴 아버지>(문학동네)는 남로당 아버지를 둔 주인공 김오현의 분투를 그린 소설이다. 책을 내고 19일 낮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작가는 이 작품이 20여년 전에 쓴 희곡 <아버지>를 소설로 다시 쓴 것이라고 소개했다. 광주의 배우 박윤모가 모노드라마로 1998년 초연한 이후 200차례 넘게 공연했으며 오는 22~24일 궁동예술극장에서 다시 무대에 올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오현’은 무조건 자식을 많이 낳으라는 할아버지의 유언을 삶의 신조로 삼아 11남매를 생산한다. 그 가운데 아홉째인 시인 겸 소설가 칠남이가 아버지를 모시고 수몰된 고향 마을을 찾아가 아버지의 한 맺힌 지난 생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다는 얼개다.
“노자의 가르침도 있지만, ‘김오현’은 물처럼 아래로 아래로만 흐르려는 사람입니다. 강정마을 농성에도 가고 촛불시위에도 참여한, 다 큰 아들 칠남이를 꾸짖다 못해 아예 목을 졸라 죽이려 드는 데에서 보듯 그는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인물이죠. 결코 체제 속에서 모난 짓을 하지 않으려 하고 수도 검침원이나 동사무소 직원에게도 굽실거립니다. 그렇지만 생물학적 생산력만은 왕성하죠. 그런데 그런 생명의 저항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저항이 아닐까요?”
소설의 무대인 전남 장흥 유치면은 6·25 전후 모스크바로 불릴 정도로 좌익 빨치산 투쟁이 치열했던 곳이지만 장흥댐이 건설되면서 물에 잠겼다. 장흥 출신인 작가는 “옛 지명들에 남아 있는 신화와 치열한 전쟁의 역사가 모두 물에 잠긴 셈”이라며 “역사적 아픔을 배경으로 삼은 이 소설의 바탕에는 신화적 감수성이 깔려 있다”고 밝혔다.
‘글을 쓰는 한 살아 있고, 살아 있는 한 글을 쓸 것’이라는 다짐을 언제나 마음에 새긴다는 작가는 “내 글이 나오지 않으면 내가 사라진 줄 아시오”라는 농담 같은 말로 자리를 마무리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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