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의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사진 사계절 제공
[짬] 폴란드 그림책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내 창작의 고향은 한국” 친숙
볼로냐도서전 ‘대상’ 두차례 수상 실·실패 소재 2권 출간맞춰 방한
어릴적 보고 자란 직물공장서 ‘영감’
“실은 사람과 사람 연결해주는 상징” “저는 폴란드에서 직물로 유명한 도시(우치)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적, 동네엔 직물공장이 많았는데,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곤 했어요. 실이 자아져 헝겊이 되고 거기에 무늬가 새겨져 옷감이 되는 과정을 다 보았어요. 할머니도 직물공장 노동자로 일하셨죠. 실은 무엇일까요. 실은 두 사람의 연결입니다. 그의 실과 나의 실이 연결되는 장면을 저는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맏딸이 결혼했어요. 딸한테 상징적인 것, 소중한 것을 주고 싶어서, 2m50㎝짜리 세 조각으로 된 침대보를 손으로 꿰매 주었답니다. 오래된 리넨, 흰색과 회색 천 조각만 모아서 꿰맸어요. 딸에 대한 감정과 소원을 넣어 한땀 한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흘 동안 쉬지 않고 바느질만 했지요. 바느질이 깊숙이 영혼과 통하는 숭고한 기쁨을 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날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이벤트홀에는 200여명의 어른들이 그의 강연을 듣고자 몰려들었다. 철학적인 메시지를 강렬하고 개성적인 그림으로 뿜어내는 그의 그림책은 기실 어린이들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강연을 들은 정주영(35·그래픽디자이너)씨는 “이보나의 그림책은 우리 내면의 무언가를 꺼내게 하는 것 같아서 정말 좋아한다”고 말했다. 최근작 <작은 발견>은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을 도와주는 ‘실패 몸통을 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게 제 몸통의 실을 한 가닥씩 나줘준다. 그네를 타려는 노인들에게, 빨래를 너는 이들에게, 물에 빠진 이들에게 줄을 건넨다. 작가는 “어린 시절에 실패를 볼 때마다 인간 몸통이랑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헌옷 가게에 갔다가 버려진 듯 놓여 있는 오래된 실패를 발견하고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주머니 속에…> 역시 작가가 직접 바느질한 주머니들을 주인공 삼았다. 주머니 속에 뭐가 들었는지 상상을 자극하는데, 종이에 돋을새김된 주머니들을 떼낼 수 있을 것 같아 손으로 만져보게 된다. 그는 “주머니는 아이들이 비밀을 숨길 수 있고, 엄마도 콧수건을 넣어주는 그런 공간이다. 한땀 한땀 주머니를 만들면서, 엄마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회에서 통역자로 나선 이는 흐미엘레프스카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기획자 겸 번역가 이지원씨다. 2003년 이탈리아 볼로냐도서전에서 그가 들고 온 두 권의 ‘더미북’(초벌 그림책)을 보고 한국 출판사에 소개했고, 두 권의 그림책 <발가락>(논장)과 <생각>(논장)은 그의 처녀작이 되었다. 2011년 <마음의 집>(김희경 글·창비), 2013년 <눈>(창비)으로 그림책 분야 세계적 권위의 볼로냐도서전 라가치상 대상을 두차례나 한국 출판계에 안겼다. 그의 그림책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에 있는 진실을 천착한다. 흐미엘레프스카 그림책의 열쇳말은 존재와 존재를 잇는 ‘연결’이라 할 만하다. 그는 그림책을 그리는 이유를 “그림책은 세상을 좀더 낫게 만드는 매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가 아픈 누군가에게 제 심장을 주거나, 전쟁중인 시리아 어린이들을 직접 돕지는 못하지만, 그림책은 그런 어려움에 놓인 이들을 돕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흐미엘레프스카는 23일엔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서 ‘열린 그림책’을 주제로 한 강연회를 이어가며, 24일엔 경기도 판교 현대어린이책미술관에서 ‘수수께끼 주머니 놀이’를 주제로 한 어린이 독자 체험 행사(오전 10시30분), 서울시청 서울북페스티벌 현장에서 작가 사인회(오후 3시30분)를 한다. 허미경 선임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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