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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고난했던 ‘여공’ 의 현실 특정한 이념형 틀에서 꺼내

등록 2005-10-14 18:51

평화시장 등에 난립한 소규모 섬유제조업체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다락방’이라고 불리는 좁은 공간에서 일해야 했다. 사진은 1960년대 다락방의 모습. 도서출판 <이매진> 제공.
평화시장 등에 난립한 소규모 섬유제조업체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들은 ‘다락방’이라고 불리는 좁은 공간에서 일해야 했다. 사진은 1960년대 다락방의 모습. 도서출판 <이매진> 제공.
‘그녀들의 역사-여공 1970’ 김원 교수 펴내

노동자 전태일이 한국 사회의 현실에 눈을 뜬 것은 ‘자기 연민’ 때문이 아니었다. 평화시장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어린 여공들이 그를 일깨웠다. 흔히 공순이라 불렸던 이들은 공장에서는 시다였고, 가정에서는 식모였으며, 거리에서는 버스차장이거나 때로 기지촌 여성이었다. ‘공순이’란 말에는 이미 젠더(사회적 성)·계급·나이의 차원에서 총체적으로 형성된 강한 멸시가 담겨 있었다.

당대 사회 최하층을 이루고 있었던 이들은 지금까지도 여성 또는 계급으로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전태일이 느낀 ‘사회적 연민’은 여전히 더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한 젊은 학자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김원 서강대 연구교수가 <그녀들의 역사-여공 1970>(이매진)을 펴낸 것이다.

이 책은 산업화시기인 1970년대 여성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다. 굳이 ‘이야기’라 표현한 것은 그 서술 방식의 특이함 때문이다. 학위논문을 기초로 삼았으면서도 기왕의 학술서적 형식을 탈피했다. ‘여공’에 주목하게 된 개인사적 배경을 담은 장문의 프롤로그부터 특징적이다. 크게 보면 정치·경제적 거시분석과 여공 개인의 삶에 밀착한 일상사적 미시분석이 수시로 교차한다. 식모를 둘러싼 한국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김기영의 영화 <하녀>를 불러들이거나, 여공들이 즐겨 불렀던 민중가요와 대중가요를 함께 분석하는 식이다.

그녀들의 반역사-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여공 1970
읽는 이에 따라서는 이런 ‘장치’들이 오히려 독서를 방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당시 여공의 현실을 특정한 이념형의 틀에 가둬놓는 것을 피하려는 연구자의 노력으로 읽히는 대목이 더 많다.

지은이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여성과 노동에 대한 담론의 변화를 통한 현대 한국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여공 자신의 담론, 국가·교회·고용주 등이 생산한 여공에 대한 담론, 노동운동가·노동사연구자 등이 만들어낸 여공에 대한 담론 등이 모두 연구대상이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가장 먼저 사회화시킨 것으로 평가되는 민주노조운동 및 교회선교사업에 대해 미묘한 ‘균열과 폭력’을 읽어낸 것도 지은이의 독특한 관점에 힘입은 결과다. 여공을 둘러싼 지배 담론을 해체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당대 여공의 삶이 더욱 풍부하게 드러난다. 8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이 책은 여공에 대한 각종 기사와 기록, 문헌을 망라하고 있다. 노동운동, 빈곤, 여성, 박정희 시대, 고도산업화 등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그 자체가 훌륭한 1차 사료의 구실을 할 수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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