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서울 고려대 안암 캠퍼스 민주광장에서 시간강사의 시간당 임금 인상과 수업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는 천막 농성이 펼쳐졌다. 책을 읽으며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 학교 철학과 학생.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09동1201호 지음
은행나무·1만2000원 지난 2010년 5월, 광주 조선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서정민(당시 45살) 박사가 5장짜리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수 한 자리가 1억5천만원, 3억원” 등의 내용이 담긴 그의 유서는 열악한 처우에 신음하는 시간강사의 현실과 이들의 노력을 착취해 굴러가는 한국 대학 사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그의 죽음으로 파문이 일자 정부에서는 고등교육법 개정 등으로 부랴부랴 시간강사 처우를 개선하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수만명의 시간강사들은 4대보험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처럼 ‘시간강사’란 존재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해고, 죽음과 같은 충격적인 사건을 만날 때에야 비로소 잠깐씩 그 단편적인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잡일 돕는 아이” 취급하는 대학
한국의 시간강사 현실 올올이
패스트푸드점 ‘알바’로 생계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309동1201호’란 필명을 쓰는 지은이가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연재해, 줄임말인 ‘지방시’로 불리며 큰 관심을 끌었던 글이다. 그 연재 뒤에는 시간강사로서 지은이가 학생들과 만나고 교감하는 이야기들을 담은 2부가 인터넷 매체 <슬로우뉴스>에 연재됐다. 이번에 1·2부를 함께 묶어 책으로 출간됐다. 프롤로그에서 지은이는 “대학이 가진 맨얼굴을 한 번쯤 내어 보이고자 했다. 내부 고발이나 처우 개선 요구와 같이 거창하거나 감당 못할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이렇게 살아가는 한 세대가 있음을 기록하고자 했다”고 말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지방시>를 쓰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두 개의 단어는 아마도 ‘스스로’와 ‘성찰’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른바 ‘명문’이 아닌 지방대에서,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던 인문학을 배우고 가르쳐온 지은이는 자신이 겪었고, 또 현재에도 겪고 있는 대학 사회를 담담하게 서술해나간다. 지은이가 석·박사 과정을 지나오며 겪은 이야기를 담은 1부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학기 등록금은 450만원인데 조교 활동으로 보전되는 비용은 300만원”, 따라서 “숨쉬는 비용을 제외하고도 1년 동안 300만원이 비었다.” 따라서 수업이 있는 주 9시간을 제외하고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 5시까지 사무실에서 조교 근무를 하면서도,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메꿔야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나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명목상의 직장은 대학이 아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라는 지은이의 말이 가슴을 찌른다. “대학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에게 각각 행정과 강의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은이에게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은퇴하신 부모님을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게 해준 곳은 맥도날드였다고 한다. 지은이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참 슬픈 일”이라며, “저의 생업인 대학에서의 노동, 그러니까 ‘강의’와 ‘연구’를 통해 정당한 액수의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길 바란다”고 말한다. 지은이는 석사 1기 시절, 연구소장이 어느 학회에서 자신을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했던 일화를 소개한다. 그 일화를 들은 박사 수료생은 “내가 잡일을 하고 너는 잡일하는 나를 돕고 있으니까, 그건 정말이지 정확한 비유”라고 말한다. 또 연구소장은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학부생을 ‘알바’라고 소개해 한동안 그를 우울하게 했다고 한다. 대학과 연구소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수료생=잡일, 과정생=잡일 보조, 학부생=아르바이트’ 구도를 이미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다. 담담하지만 비교적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1부에 견줘, 시간강사로서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2부는 좀더 성찰적이다. 생업인 강의와 연구가 여전히 생계를 보장해주지 않지만, 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벼려가는 과정이 담겼다. 지은이는 “모든 학생에게 ‘갑’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강의실에 선다. 강의실을 을이 없는, 오로지 갑만 존재하는 ‘갑갑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강단에서 서보니 자신이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학생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많았기에, ‘교학상장’이란 말을 마음에 새기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한 학생이 면담에서 “교수님은 강의할 때 무척 행복해 보인다”고 한 말은 그로 하여금 “구원받은 느낌”을 받게 했다고 한다. ‘헬조선’이라 불릴 정도로 잔인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에게 ‘꿈’과 ‘노오력’(노력을 강조하는 신조어)을 강조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착취 논리다. 지은이는 “삶의 가치 판단을 할 자격은, 그리고 자격을 정할 자격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나가는 무수한 ‘지방시’들이, 아픔과 노력을 강요하는 ‘괴물’의 실체와 마주하고 또 함께 싸워나갈 수 있길 기대하는 간절한 마음이 읽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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