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미디어 2000년
: 파피루스에서 페이스북까지
톰 스탠디지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1만9800원 고대 로마인들은 편지 쓰기를 즐겼다. 부유한 이들은 필경사에게 편지를 구술하고 노예를 시켜 배달했다. 먼 거리를 가는 편지는 파피루스에 썼지만, 빠른 답장을 바라는 근거리 서찰은 납판에 철필로 썼다. 널빤지 가운데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도려내고 밀납을 발라 만든 이 네모꼴 판은 태블릿 컴퓨터를 빼닮았다. 모양만 닮은 것이 아니다. 편지를 받은 이는 같은 납판에 답장을 써서 심부름꾼 편에 곧장 돌려보내기도 했다. 납판은 일종의 쌍방향 매체였던 셈이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편집장이자 디지털 부문 책임자인 톰 스탠디지가 쓴 <소셜 미디어 2000년>은 로마의 편지를 비롯한 과거의 매체들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비롯한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속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19세기 중엽 이후 대형 신문과 잡지가 나타나고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출현하면서 기존 매체들의 쌍방향성 대신 일방적 전달과 수동적 소비라는 불건강성이 지배했다면, 인터넷 기술 도입 이후 발달한 뉴미디어는 신문과 방송 같은 올드 미디어가 괄호쳤던 민주적 쌍방향성을 되살렸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올드 미디어는 역사적 예외였다”. 로마는 편지의 나라이자 일일 관보(acta diurna)와 벽글의 나라이기도 했다. 집정관으로 선출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을 견제하고자 취한 첫 조처였던 관보는 ‘언론’(journalism)의 어원이 되기도 했는데, 부자들은 포룸에 있는 목판에 매일 게시된 관보를 필경사를 시켜 베껴서 친구들에게 보냈으며 자신의 논평이나 배경 정보를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돈이 없는 이들은 집 안팎 벽에 정치 구호와 광고, 개인적 편지 등을 적었다. 1만~2만 인구였던 도시 폼페이의 벽에서는 1만1000개 넘는 낙서가 확인될 정도였다. 관보와 마찬가지로 벽에 쓴 글에도 댓글이 붙어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페이스북 프로필 페이지를 ‘담벼락’(Wall)이라 부르는 것이 로마의 벽글과 무관하지 않겠는데, 이 책의 원제 ‘벽에다 글쓰기’(Writing on the Wall)는 그런 점에서 절묘한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로마의 편지와 관보, 벽글을 잇는 것이 루터 종교개혁기의 인쇄술과 17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 확산된 커피하우스였다. 커피하우스는 주요 정기간행물을 구독했으며 우편 제도가 발달하기 전 우편물 수령처로도 구실을 했다. “커피하우스의 본분은 뉴스와 여론을 말, 글, 인쇄물의 형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원저가 2013년작인 이 책의 말미에서 지은이는 2012년 아랍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의 구실과 세계 최대 인터넷 사용 국가이면서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상반된 사례를 통해 소셜 미디어와 ‘혁명’의 상관관계를 따진다. 낙관론과 비관론을 비교 소개하며 균형을 취하지만 이 공학 전공 언론인의 결론은 역시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가깝다. 책을 덮으면서,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시절이 하 수상한 탓일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 파피루스에서 페이스북까지
톰 스탠디지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1만9800원 고대 로마인들은 편지 쓰기를 즐겼다. 부유한 이들은 필경사에게 편지를 구술하고 노예를 시켜 배달했다. 먼 거리를 가는 편지는 파피루스에 썼지만, 빠른 답장을 바라는 근거리 서찰은 납판에 철필로 썼다. 널빤지 가운데를 직사각형 모양으로 도려내고 밀납을 발라 만든 이 네모꼴 판은 태블릿 컴퓨터를 빼닮았다. 모양만 닮은 것이 아니다. 편지를 받은 이는 같은 납판에 답장을 써서 심부름꾼 편에 곧장 돌려보내기도 했다. 납판은 일종의 쌍방향 매체였던 셈이다.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편집장이자 디지털 부문 책임자인 톰 스탠디지가 쓴 <소셜 미디어 2000년>은 로마의 편지를 비롯한 과거의 매체들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비롯한 오늘날 소셜 미디어의 속성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19세기 중엽 이후 대형 신문과 잡지가 나타나고 20세기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출현하면서 기존 매체들의 쌍방향성 대신 일방적 전달과 수동적 소비라는 불건강성이 지배했다면, 인터넷 기술 도입 이후 발달한 뉴미디어는 신문과 방송 같은 올드 미디어가 괄호쳤던 민주적 쌍방향성을 되살렸다는 것이 지은이의 판단이다. 그런 점에서 “올드 미디어는 역사적 예외였다”. 로마는 편지의 나라이자 일일 관보(acta diurna)와 벽글의 나라이기도 했다. 집정관으로 선출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을 견제하고자 취한 첫 조처였던 관보는 ‘언론’(journalism)의 어원이 되기도 했는데, 부자들은 포룸에 있는 목판에 매일 게시된 관보를 필경사를 시켜 베껴서 친구들에게 보냈으며 자신의 논평이나 배경 정보를 덧붙이기도 했다. 한편 돈이 없는 이들은 집 안팎 벽에 정치 구호와 광고, 개인적 편지 등을 적었다. 1만~2만 인구였던 도시 폼페이의 벽에서는 1만1000개 넘는 낙서가 확인될 정도였다. 관보와 마찬가지로 벽에 쓴 글에도 댓글이 붙어서 대화가 이어지기도 했다. 오늘날 페이스북 프로필 페이지를 ‘담벼락’(Wall)이라 부르는 것이 로마의 벽글과 무관하지 않겠는데, 이 책의 원제 ‘벽에다 글쓰기’(Writing on the Wall)는 그런 점에서 절묘한 중의적 의미를 지닌다. 로마의 편지와 관보, 벽글을 잇는 것이 루터 종교개혁기의 인쇄술과 17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 확산된 커피하우스였다. 커피하우스는 주요 정기간행물을 구독했으며 우편 제도가 발달하기 전 우편물 수령처로도 구실을 했다. “커피하우스의 본분은 뉴스와 여론을 말, 글, 인쇄물의 형태로 공유하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원저가 2013년작인 이 책의 말미에서 지은이는 2012년 아랍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의 구실과 세계 최대 인터넷 사용 국가이면서도 검열에서 자유롭지 못한 중국의 상반된 사례를 통해 소셜 미디어와 ‘혁명’의 상관관계를 따진다. 낙관론과 비관론을 비교 소개하며 균형을 취하지만 이 공학 전공 언론인의 결론은 역시 비관보다는 낙관 쪽에 가깝다. 책을 덮으면서,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시절이 하 수상한 탓일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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