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서 하늘 보기
황현산 지음/삼인·1만3000원 ‘시인들이 사랑하는 평론가’ 황현산은 자신의 새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시화’(詩話) 그러니까 시에 관한 이야기로 분류했다. 시화란 본격 평론과 산문 사이에 놓이는 장르. 꼼꼼한 작품 분석과 세상사에 대한 논평, 개인적 경험담을 버무려 ‘시적인 것’의 알짬을 까다롭지 않게 알려준다. 27개 꼭지 중 첫 이야기는 이육사 시 ‘광야’를 다룬다.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너무도 익숙해진 이 작품에 관해 무슨 새롭게 할 말이 있을까 싶지만,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광야’처럼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 밀착해 장려한 리듬을 지닌 시는 이해보다 먼저 감정적 동조가 앞서기에, 시에 담긴 복잡한 생각은 뒷전으로 미뤄지기가 쉽다.” 작품에 대한 기초적 이해 차원에서도 따질 게 적지 않다는 것이다. 첫 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에서 “들렸으랴”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부터 의견이 갈린다. ‘들렸겠는가?’로 이해하는 쪽과 ‘들렸으리라’의 줄임말로 보는 쪽이 맞서는데, 지은이는 ‘들리지 않았다’ 쪽을 편든다. 닭 한 마리의 울음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을 알리는 섭리의 계명성(鷄鳴聲)을 인정할지 말지 하는 판단이 여기에 개입한다. 역사의 주체가 하늘의 섭리인가 인간인가 하는 역사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하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진보를 믿는 육사의 의지가 바로 이렇게 ‘땅의 역사’로 표현된다.”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심신이 망가진 상태에서 술을 밥 삼아 마시고 숨결처럼 시를 토해내다 스러진 박정만, 그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가난과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 진이정, 자본주의적 욕망의 질주에 치여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에 이른 최승자 그리고 이용악과 한용운과 황진이 등의 삶과 시가 특유의 유려하고 세련된 문장에 얹혀 소개된다.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이 책의 글들에는 그해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분노가 치통처럼 생생하다.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고, 또다시 번들거리는 얼굴로 웃게 될 것이 두렵다. 죄악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잠겨들며 죄악이 죄악인 줄도 모르고 마음이 무디어질 것이 두렵다”면서 그는 김종삼의 ‘민간인’과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의 ‘부재의 형태’처럼 아이 잃은 부모의 처지에서 쓴 시들을 통해 슬픔의 미학적 승화 가능성을 엿본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화’를 초연을 가장한 방관으로 오해할 이들을 향해 그는 애통하게 강조한다. “숨 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 희망을 간직하는 일이 ‘지금 이 자리의 실천’과 다른 말일 수 없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황현산 지음/삼인·1만3000원 ‘시인들이 사랑하는 평론가’ 황현산은 자신의 새 책 <우물에서 하늘 보기>를 ‘시화’(詩話) 그러니까 시에 관한 이야기로 분류했다. 시화란 본격 평론과 산문 사이에 놓이는 장르. 꼼꼼한 작품 분석과 세상사에 대한 논평, 개인적 경험담을 버무려 ‘시적인 것’의 알짬을 까다롭지 않게 알려준다. 27개 꼭지 중 첫 이야기는 이육사 시 ‘광야’를 다룬다. 중고교 교과서에 실려 너무도 익숙해진 이 작품에 관해 무슨 새롭게 할 말이 있을까 싶지만, 지은이의 생각은 다르다. “‘광야’처럼 우리의 역사적 현실과 밀착해 장려한 리듬을 지닌 시는 이해보다 먼저 감정적 동조가 앞서기에, 시에 담긴 복잡한 생각은 뒷전으로 미뤄지기가 쉽다.” 작품에 대한 기초적 이해 차원에서도 따질 게 적지 않다는 것이다. 첫 연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에서 “들렸으랴”를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부터 의견이 갈린다. ‘들렸겠는가?’로 이해하는 쪽과 ‘들렸으리라’의 줄임말로 보는 쪽이 맞서는데, 지은이는 ‘들리지 않았다’ 쪽을 편든다. 닭 한 마리의 울음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을 알리는 섭리의 계명성(鷄鳴聲)을 인정할지 말지 하는 판단이 여기에 개입한다. 역사의 주체가 하늘의 섭리인가 인간인가 하는 역사철학적 논쟁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이다. “하늘의 섭리가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진보를 믿는 육사의 의지가 바로 이렇게 ‘땅의 역사’로 표현된다.” 한수산 필화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심신이 망가진 상태에서 술을 밥 삼아 마시고 숨결처럼 시를 토해내다 스러진 박정만, 그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가난과 질병으로 삶을 마감한 진이정, 자본주의적 욕망의 질주에 치여 정신병원을 들락거리기에 이른 최승자 그리고 이용악과 한용운과 황진이 등의 삶과 시가 특유의 유려하고 세련된 문장에 얹혀 소개된다. 2014년 한 해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이 책의 글들에는 그해 4월에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분노가 치통처럼 생생하다. “이 비통함이 잊힐 것이 두렵고, 또다시 번들거리는 얼굴로 웃게 될 것이 두렵다. 죄악의 구렁텅이에 더 깊이 잠겨들며 죄악이 죄악인 줄도 모르고 마음이 무디어질 것이 두렵다”면서 그는 김종삼의 ‘민간인’과 그리스 시인 야니스 리초스의 ‘부재의 형태’처럼 아이 잃은 부모의 처지에서 쓴 시들을 통해 슬픔의 미학적 승화 가능성을 엿본다. “시를 읽고 쓰는 일은 희망을 단단히 간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화’를 초연을 가장한 방관으로 오해할 이들을 향해 그는 애통하게 강조한다. “숨 쉴 때마다 들여다보는 핸드폰이 우리를 연결해주지 않으며, 힐링이 우리의 골병까지 치료해줄 수 없으며, 품팔이 인문학도 막장드라마도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않는다. 실천은 지금 이 자리의 실천일 때만 실천이다. 진정한 삶이 이곳에 없다는 말은 이 삶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라, 이 삶을 지금 이 모양으로 놓아둘 수 없다는 말이다.” 시를 읽고 쓰는 일, 희망을 간직하는 일이 ‘지금 이 자리의 실천’과 다른 말일 수 없겠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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