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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법해석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나?

등록 2015-11-26 20:19

25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 주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오토 데펜호이어 독일 쾰른대 교수가 ‘누가 법해석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25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 주제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오토 데펜호이어 독일 쾰른대 교수가 ‘누가 법해석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판결도 심판하는 독일 헌법재판소
견제수단 없는 막강한 존재로 부상
“권능 강화의 결과를 생각하라”
헌재 심포지엄서 독일 법학자 제언
“대법원이 문제다.”

이런 제목이 달린 8월24일자 성명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사실상 헌법재판소(헌재)가 스스로 새로운 권능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이날 박정희 시대 긴급조치에 따른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헌법의 이름으로 깨달라고 청구했다. 이른바 ‘재판소원’을 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헌법과 법률에서 재판소원은 허용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1항은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래서 민변은 그 조항의 위헌 여부도 함께 판단해 달라고 했다.

민변은 그 이유를 “사법권력에 대한 통제수단으로서 그 제도적 취지와 실효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헌재더러 대법원을 통제해 달라고 공개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법에 못하도록 돼 있는 일인만큼 헌재가 이 헌법소원을 받아들이려면 대법원 판결에 대한 위헌 결정을 통해 권한 범위를 스스로 확장하는 것말고는 국회의 입법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마침 헌재는 이 사건의 주심 재판관을 정해 심리를 진행하고 있다. 또 변호사의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무효라고 한 대법원 판결도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는 상태다.

만약 헌재가 이 청구들을 받아들인다면 권한 범위를 놓고 대법원과 일대 격돌이 불가피해진다. 당사자인 두 기관뿐 아니라 헌법학계에서도 이 문제는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난제다. 재판으로 침해당한 권리는 어디서 구제받느냐는 항변은 분명 이유가 있지만,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순간 헌재는 대법원을 능가하는 ‘제4심’의 지위를 갖게 되는 헌법적 문제가 발생한다.

이처럼 민감한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심포지엄이 25일 헌재 부설 헌법재판연구원에서 열렸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재판소원이 전면 허용되고 있는 독일의 저명한 헌법학자가 주요 발제자로 초청됐다는 점이다. 어쩌면 헌재는 재판소원과 관련한 호의적 발언을 기대했음직하다. 하지만 막상 연단에 선 그의 발제문은 결이 달랐다.

‘누가 법해석의 수호자가 되어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에 나선 오토 데펜호이어(Otto Depenheuer) 독일 쾰른대 교수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들어갈 때는 자유인이지만, 나갈 때는 노예가 되는 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헌재의 권능 확대가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독일의 법원 체계는 기본법(헌법) 조항에 따라 ‘연방헌법재판소(헌재)-연방법원-주법원’으로 구성되는데, 일반적인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연방법원과 연방행정법원, 연방재정법원, 연방노동법원, 연방사회법원 등 5개 ‘전문’ 연방법원이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그 위에 헌재가 있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이처럼 헌재가 사실상 ‘초상위 상고심 기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판례를 통해 연방법원들에서 이뤄진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즉 재판소원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면서부터다.

1957년 엘페스 결정과 그 이듬해 뤼트 결정은 그 심대한 파급력 때문에 흔히 ‘빅뱅 결정’이라고 불린다. 이를 통해 기본권에 대한 헌재의 판단은 “가치 결정적 기본원칙 규범”이 되어 모든 국가권력을 구속하게 됐고, 그 범위에는 모든 법원의 판결권도 예외 없이 포함됐다. 데펜호이어 교수에 따르면, 헌재의 권한 확대는 그 자체로 유효하고 성공적이었지만, 민법상 다툼에까지 헌재가 간섭을 하는 까다로운 문제를 발생시켰다. 예를 들어 어떤 법원의 민사 판결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적 함의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재판소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전문법원에서는 단순법률적 다툼에서 헌재에 의한 잠정적 통제 없이는 더 이상 어떤 판결도 내릴 수 없게 되었”고, 결국 “법률 해석에 대한 전문법원의 자율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같은 헌재의 전문법원 지배현상은 하나의 딜레마로 이어진다. 헌재에 “헌법을 ‘올바르게’ 해석할 의무가 있긴 하지만, 그러면 헌재가 내린 결정이 과연 헌법을 올바르게 해석한 것인지는 누가 판단하는가. 왜냐하면 헌재의 “결정에 반하여 헌법 침해를 주장할 수 있는 어떠한 권리 구제수단이나 제도적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독일 헌재는 중세 교황이나 누렸던 ‘오류불가성’을 지닌 존재가 된 것이다.

결국 헌재는 이른바 ‘해석주권’을 통해 의회가 만든 법률, 최고심급의 법해석, 사실평가까지를 새롭게 해석할 “패권적” 권능을 갖게 됐다. 그토록 막강한 헌재이지만 스스로 권한 남용을 하지 않으려는 “정치적 영리함, 지혜, 선견지명” 이외에 아무런 견제 수단이 없다. 경계없는 헌법재판, “헌재의 사법국가화는 위험”하다.

‘법치국가에서 판결국가로’, ‘기본법의 통치자는 누구?’, ‘판사의 정부’ 등 헌재의 정체성을 따지는 비판적 언사들이 많다고 소개한 데펜호이어 교수는 “독일을 부정적 본보기로 삼으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 개념을 최초로 구상하고 제안했던 한스 켈젠(1881~1973)의 말을 인용했다. “헌법에는 헌재가 통제할 실체적 기본원칙, 지침, 제한 등이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정해져야 한다. 그런 상세한 규정이 부족하면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와 원칙들이 매우 위험한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헌재는 권력의 완전성을 갖추게 되며. 이는 참을 수 없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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